[독자칼럼]박소연/총알택시만큼 짜증나는 ‘低速택시'

  • 입력 2003년 7월 28일 18시 05분


코멘트
박소연
자가용이 없는 필자는 출퇴근길 버스 편이 마땅치 않아 택시를 이용해야만 하는 처지다. 며칠 전 아침 출근길, 택시가 드문 집 주변 사거리에 두 대의 택시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택시는 필자를 발견한 듯 파란불로 바뀌기도 전에 먼저 출발하기 위해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기록을 깨기 위한 100m 달리기 선수들처럼. 드디어 신호가 바뀌고 택시들이 총알처럼 달려오기 시작했다. 결승점은 바로 필자의 앞이었다. 짧지 않은 20여년을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이토록 간절히 필요의 대상이 됐던 적이 있었을까. 쓴웃음이 나왔다.

택시들이 필자에게 도착하기 100m 전쯤이었다. 건너편 반대 차로에 있던 하얀 물체가 갑자기 급회전을 하더니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정신을 가다듬어 보니 구형 쏘나타택시였다. 그 택시는 나를 보자마자 필살의 U턴으로 날렵하게 내 앞에 선 것이다. 필자는 신형의 다른 택시들을 두고도 먼저 도착한 낡은 택시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로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택시운전사라면 이 한 몸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발하는 순간부터 기대는 짜증으로 바뀌었다.

이 택시는 제라드 피레의 영화 ‘택시’에서 봤던 총알택시를 기대했던 필자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횡단보도 100m 앞에서부터 서행운전을 하는가 하면, 끼어들기 차량마다 친절하게 속도를 늦춰주었다. 아무리 막히는 길이라도 차선 바꾸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에어컨마저 오래된 모양인지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와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여주인공 자스민이 몰던 덜컹거리는 고물차처럼 늘어지고 여유롭기까지 했다. 필자가 불법에 익숙한 건지, 택시운전사가 너무 정도를 지키는 것인지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한없이 지루했다.

손님을 잡을 때까지는 무법택시를 방불케 하다가 정작 손님이 탔을 때는 최고의 모범 운전사가 되는 것을 필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안전한 서비스도 좋지만 바삐 이동해야 하는 택시고객의 입장을 배려해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박소연 ㈜다음커뮤니케이션 디지털 아이템팀 차장

서울 강남구 역삼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