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백선기/세계의 폭력

  • 입력 2003년 7월 27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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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라크에 파견된 미군 병사들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두 아들을 6시간의 교전 끝에 사살했다. 미국 CNN과 영국 BBC 등 각국 방송은 이 소식을 일제히 ‘긴급 뉴스’로 다뤘다. 보도는 미군이 사살한 사람들이 과연 후세인의 아들이 맞는지 여부와 이라크 내부 반응에 초점이 맞춰졌다. 때마침 후세인은 육성 녹음테이프를 통해 ‘미국에 대한 항전’을 촉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세인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후세인 정권은 끝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며 득의만만해 했다.

▷같은 날 스웨덴에서 열리고 있던 제17차 세계커뮤니케이션학회는 세계의 폭력과 그 해결 방안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학회에 참가한 이슬람 학자들의 반응이었다. 말레이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온 학자들은 “우리는 모든 테러에 반대한다. 무슬림이 테러나 폭력집단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들은 이슬람에 대한 세계적 편견과 증오에 우려를 나타냈으며, 미국의 힘을 두려워했다. 미국이 또 다른 폭력적 대응을 시도하지 않을까에 대해서도 전전긍긍했다.

▷반면에 이 학회에 참석한 미국 학자들은 9·11 참사 이후 미국의 대처 방식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들은 부시 행정부의 국제 전략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테러에 대처하는 것은 정당하다 해도 그것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며 큰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한 학자는 9·11 참사 이후 고조된 미국인의 애국심은 국제 문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억제하고 있으며 통일된 견해와 방침만이 확산되고 있다고 미국 내 분위기를 전했다. 학자들이 개인적으로는 부시의 폭력적 대응 방식에 반대해도 공개적으로는 그런 견해를 피력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제 문제에 관한 한 이제 세계는 대화와 토론이 사라지고 있으며 힘과 폭력이 곳곳에 만연하는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다. 선과 악, 우군과 적군, 평화와 증오, 문명과 야만, 기독교와 이슬람 등 대립과 갈등구조는 결국 세계를 ‘우리 편’과 ‘남의 편’이라는 이중구조로 양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대립은 끊임없는 폭력으로 심화되고 있다. 이번 세계커뮤니케이션학회가 끝나는 자리에서 한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제 분쟁을 해결하려면 우선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을 초청해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싶다.”

백선기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교수 baek99@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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