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스웨덴에서 열리고 있던 제17차 세계커뮤니케이션학회는 세계의 폭력과 그 해결 방안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학회에 참가한 이슬람 학자들의 반응이었다. 말레이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온 학자들은 “우리는 모든 테러에 반대한다. 무슬림이 테러나 폭력집단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들은 이슬람에 대한 세계적 편견과 증오에 우려를 나타냈으며, 미국의 힘을 두려워했다. 미국이 또 다른 폭력적 대응을 시도하지 않을까에 대해서도 전전긍긍했다.
▷반면에 이 학회에 참석한 미국 학자들은 9·11 참사 이후 미국의 대처 방식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들은 부시 행정부의 국제 전략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테러에 대처하는 것은 정당하다 해도 그것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며 큰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한 학자는 9·11 참사 이후 고조된 미국인의 애국심은 국제 문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억제하고 있으며 통일된 견해와 방침만이 확산되고 있다고 미국 내 분위기를 전했다. 학자들이 개인적으로는 부시의 폭력적 대응 방식에 반대해도 공개적으로는 그런 견해를 피력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제 문제에 관한 한 이제 세계는 대화와 토론이 사라지고 있으며 힘과 폭력이 곳곳에 만연하는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다. 선과 악, 우군과 적군, 평화와 증오, 문명과 야만, 기독교와 이슬람 등 대립과 갈등구조는 결국 세계를 ‘우리 편’과 ‘남의 편’이라는 이중구조로 양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대립은 끊임없는 폭력으로 심화되고 있다. 이번 세계커뮤니케이션학회가 끝나는 자리에서 한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제 분쟁을 해결하려면 우선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을 초청해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싶다.”
백선기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교수 baek99@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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