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골프입양’ 소녀 이숙진 정상에 서다

  • 입력 2003년 7월 27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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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진-리 웨스토프(Sukjin-Lee Wuesthoff·사진)’. 27일 제55회 US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른 이숙진(16)의 영문 이름에는 외국인의 성(姓)이 붙어있다.

웨스토프는 이숙진의 이모부. 이모 숙희씨는 29년 전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스티븐 웨스토프와 결혼했고 이숙진은 99년 이모부 가정에 입양된 것.

자신을 낳아준 생부모가 생존해 있지만 이숙진이 굳이 ‘입양’을 택한 이유는 ‘골프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일념 때문. 12세 어린나이에 부모 품을 떠나 낯선 이국땅에 건너간 집념이 맺은 첫 결실은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숙진은 이날 우승인터뷰에서 “더 나은 골프를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라운드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여기(미국)서는 매일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미국 코네티컷주 페어필드 부르크론CC(파71)에서 이숙진이 대회 2연패를 노리던 유학생 박인비(15)와 치른 결승전(18홀 매치플레이)은 극적이었다. 이숙진은 8번홀까지 무려 5홀 차까지 뒤지며 패색이 짙었으나 대역전 드라마를 엮어냈다.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은 그는 박인비가 3퍼팅으로 보기를 범한 16번홀에서 드디어 All Square(동점)를 만들었다.

승부의 분수령이 된 17번홀(파4·396야드). 이숙진은 핀까지 157야드를 남겨두고 아이언 6번으로 친 두 번째 샷을 홀컵 2.5m지점에 붙였다. 그는 이 홀 버디로 잡은 첫 리드를 최종 18번홀(파4)에서 지켜내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갤러리가 많아서 그런지 초반에는 손이 떨려 퍼팅이 잘 안됐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응원오신 아버지가 전날 밤 해주신 말씀이 큰 힘이 됐어요. 정신적인 압박은 디펜딩 챔피언이 더 클 테니 최선만 다하라는 말이었어요.”

이번 우승으로 이숙진은 ‘기회’를 얻었다. 내년 본선 직행은 물론 아마추어 자격을 유지한다면 US여자아마추어선수권은 2년, US여자오픈은 5년간 지역예선을 면제받게 된 것. 하지만 이 보다 더 큰 소득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안영식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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