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 김용택 덕치초교 제자들 글과 그림 엮어 책내

  • 입력 2003년 7월 27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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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 한 자락, 흩날리는 붉은 꽃잎이 천진한 눈동자에 담긴다.

전북 임실군 덕치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의 그림과 ‘섬진강 시인’ 김용택(55·덕치초교 교사)의 소박한 글이 만났다. 자연과 생명, 아이들에 대해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 시인의 글 19편과 꼬마들의 그림 45점이 ‘꽃을 주세요’(백년글사랑)라는 독특한 책속에 한데 모인 것. 사제(師弟)의 글과 그림은 묘하게 어우러지며 한목소리를 내고 어른들에게 잃어버린 자신과 흘려보낸 시간, 청명한 동심, 사랑에의 설렘을 돌아보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어느 봄날, 시인은 ‘우리학교 운동장 가에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지금 난리가 났다’고 눈을 크게 뜬다. 학교 뒤꼍에 살구꽃, 땅 위에 작은 풀꽃들, 뒷산 진달래꽃이 ‘사람을 잡게 아리삼삼하게 피어있다’고 자랑이다.

‘우리 반 2학년 아이들이랑 나란히 쭈그려 앉아 일곱이서 바라보는 개망초는/ 참/ 해사해.// 나는 지금 정말 이 꽃에서 눈길을 거두기 싫어. 다른 곳으로 고개 돌리기 싫어./ 정말 싫다니까’ (‘개망초꽃’ 중)

시인의 이야기 곁에는 아이들의 꽃그림이 함께 자리한다. 고사리손에 크레파스를 쥐고 끙끙 힘들여가며 눌러 그린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꽃을 주세요’에서 아이들의 그림은 삽화가 아니다. 책의 또 다른 주인이다. 크레파스가 묻어날 듯 생생한 그림에는 ‘평안’이 깃들어 있다. 시인은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깜짝 놀란다”고 했다.

푸른 벌판을 한 마리 검은 말이 두 발로 달려간다. 그림 옆에 시인은 산문에서 뽑은 문장 하나 ‘나는 세상에 늘 새로 눈뜨는 첫 눈이고 싶다’를 새겨 넣었다. 야생화가 가득 꽂힌 꽃병 속에서 자라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그려 넣었다. 똑같은 정물을 놓고 함께 그린 5명 아이들의 그림은 모두 제각각이다.

“지난해 2학년을 가르쳤는데, 애들이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고이 간직하고 있지요. 애들이 꽃을 많이 그려요. 그런데 희한해요. 똑같은 꽃을 그려도 비슷한 그림이 하나도 없어요. 꽃병도 꽃도, 심지어 색깔도 달라요. 지들 나름대로 사물을 보고 해석을 하는 것이죠. 나도 궁금해요. 어떻게 이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모두 순수하고 깨끗하지만 닮은 데가 없어요.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면 애들은 어른들 흉내밖에 못 내잖아요.”

27일 서울 강남교보문고에서 ‘우리 아이들 창의력의 샘물은 어디 고여 있을까’라는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서울에 잠시 들른 그는 아이들 자랑을 멈추지 않는다.

“나하고 아이들하고 정신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었나보다 생각했어요. 이렇게 해서 내가 정신적으로 더 넓어지는구나….(웃음)”

이렇게 아이들과 교감하는 김 시인이 사는 시골 동네에 신경림 안도현 시인이 잠시 다니러 왔다. 어머니와 함께 시인들은 마당에 있는 평상에 둘러앉아 앞산을 보는데, 꾀꼬리가 울면서 뒷산으로 날아갔다.

“어머니. 꾀꼬리가 왔네요.”(김용택)

“야아,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고 참깨 싹이 나온단다.”(어머니)

“용택이 니가 시인이 아니고, 너그 어머니가 시인이구먼.”(신경림)

시인은 어머니 말씀이 한 줄의 시라며, 꾀꼬리 울음소리로 막힌 어딘가가 뚫려서 파란 깻잎 싹 같은 시가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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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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