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의 새 희곡 '물질적 남자' 현대문학 8월호에

  • 입력 2003년 7월 27일 1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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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9일, 백화점 붕괴 참사로 503명이 희생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95년에 태어난 아이도 있었다. 그 슬픈 영혼들을 위해 이 연극에 바친다.’

지난 몇 년간 작품 활동이 뜸했던 황지우(51·시인·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사진)가 ‘현대문학’ 8월호에 희곡 ‘물질적 남자’를 발표했다.

“이 희곡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 들었습니다. 소재 때문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 위에 무너진 상판이 하나 놓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다섯 달을 끙끙거렸지요.”

무대 배경은 8년 전 일어났던 백화점 붕괴사건 현장. 콘크리트 더미 속에 생존해 있는 한 사나이가 주인공이다. 그는 원조교제를 하고 있는 여학생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다가 변을 당했다.

“묻혀진 사건을 상기하자는 의미보다는 부박한 삶이 문제들을 잊고 덮어버리고 또 덮어버리고…. 그걸 무대 위로 올려서 우리가 애써 안 보려고 하는 잊어버린 것에서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죠. 죽음에 임박해 있는 나의, 우리의 격이 무엇인가. 인간으로서의 격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사나이는 죽음을 앞에 두고 결국 자신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한낱 물질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자신을 깨닫게 된다. 한편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의 바탕에는 원조교제, 황금만능주의, 가정의 부재 등 직면한 사회 문제가 촘촘히 얽혀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희곡집 ‘오월의 신부’(2000)를 펴낸 이후 그의 생각은 줄곧 희곡쪽을 향했던 모양이다. 80년대 사회적 시대상을 새로운 시 형태로 표현해 주목받았던 시집 ‘새들은 세상을 뜨는 구나’(1983)를 비롯, ‘나는 너다’(1987)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앉아 있을 것이다’(1999) 등을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시인은 어디로 갔을까.

“시? 얼른 넘어가는 것 같아요. 시가 희곡으로 넘어가는 거죠. 둘은 비슷한 면이 있어요. 삶에 대해서 굵고 짧게 끊어야 하는 점에서. 또 표현도 많이 결핍돼 있고. 결핍이 함축을 가져오는 것이겠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단 ‘돌곶이’가 8월 29일부터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그의 희곡 ‘물질적 남자’를 무대에 올린다.

“윤정섭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무대미술과)와 함께 한창 작업 중이죠. 비주얼아트를 하는 윤 교수와 시를 했던 내가 양끝에서 조금씩 접근해가는 거예요. 이미지와 시적 텍스트를 충돌시켜보자, 거기서 스파크가 일어나는가 보자. 모든 실험이 그렇듯이 뜻밖에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을테지요.”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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