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이 경호원 “후세인, 바그다드 함락뒤에도 시내 머물러”

  • 입력 2003년 7월 25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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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바그다드 함락 1주일 뒤까지 바그다드 시내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22일 사살된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의 한 경호원은 25일 영국 더 타임스와 회견을 갖고 후세인과 두 아들의 전쟁 기간 중 행적을 털어놓았다.

3월 20일 미군은 바그다드 남부의 후세인 사저에 정밀 폭격을 가했다. 이때 후세인은 바그다드 북부의 안가에 있었다. 후세인은 전쟁 기간 중 이 집에서 수주일을 머물렀다.

미군의 두 번째 정밀 타격은 후세인이 머물고 있던 안가 바로 옆의 다른 안가에 떨어졌다. 이때부터 후세인은 첩자가 있다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4월 7일 가장 의심 가는 한 대위에게 “만수르의 식당에서 회의를 열겠다”며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뒷문으로 나가버렸다. 후세인이 문을 열고 나간 직후 식당에 합동직격탄(JDAM)이 떨어졌다. 그 대위는 즉결 처형됐다. 같은 시간 미군은 폭격으로 생긴 깊이 18m의 구덩이에서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유전자 감식을 해봐야 알겠지만 후세인과 우다이가 숨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발표하고 있었다.

이틀 뒤 바그다드가 함락됐을 때 후세인과 두 아들은 수니파 밀집지역인 아드하미야의 안가에 머물고 있었다. 근처에서 미군이 순찰을 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후세인은 사원과 거리를 방문해 지지자들의 연호를 받았다. 이후 공개된 장소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후세인과 두 아들은 며칠 동안 바그다드 시내 안가를 오갔다. 한번은 만수르 지역에서 미군 순찰차 바로 옆을 지나갔지만 미군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우다이는 불그스름한 얼굴의 미군 병사를 가리키며 “쟤는 군인보다 포르노에 어울리겠는데”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 경호원은 “후세인이 바그다드를 떠나지 않은 것은 이라크군의 수도방위 능력을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그다드 함락 후 1주일이 지나면서 일선 사령관들의 배반을 뒤늦게 절감한 후세인은 탈출을 도모했다. 전후 게릴라 저항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도 이때부터 소집됐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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