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는 말한다]'평행과 역설'…'편견의 벽' 넘어 만나는 새 세상

  • 입력 2003년 7월 25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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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 ▼다니엘 바렌보임. 동아일보 자료사진
▼에드워드 사이드 ▼다니엘 바렌보임. 동아일보 자료사진
◇평행과 역설/다니엘 바렌보임·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장영준 옮김/367쪽 1만1000원 생각의나무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대인 다니엘 바렌보임(독일 국립오페라단 음악감독)과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랍인 에드워드 사이드(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만났다. 세계 음악계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바렌보임과 현대사회와 문화에 대한 독자적 견해로 주목받고 있는 사이드는 1990년대 초 런던의 한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첫 대면을 한 후 지금까지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두 사람은 1995년 10월 컬럼비아대의 밀러극장에서 리하르트 바그너를 주제로 공개 대담을 가졌고, 그 후 5년 동안 미국과 독일을 오가며 대담이 계속됐다. 이 공개 대담은 두 사람의 친구이자 카네기홀의 예술고문인 아라 구젤리미안의 기획 아래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물처럼 흘러간다는 생각을 평화롭게 받아들일 때 가장 행복합니다.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만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변하고 진화한다는 생각에 내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행복합니다.”(바렌보임)

“우리의 정체성이란 고정된 장소나 붙박이인 어떤 물체가 아니라 끝없이 흐르는 것, 물처럼 흐르는 조수와 같다는 것입니다.”(사이드)

두 사람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적대적 출신 배경을 가졌으면서도 일찍부터 고향을 떠나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이드는 이집트의 카이로, 미국의 뉴욕 캘리포니아 등지로, 바렌보임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런던, 파리, 시카고, 베를린 등지로 옮겨 다니며 ‘유목민’의 삶을 살고 있다. 덕분에 이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점에서 자신과 타자들을 바라보는 공통의 시각을 가지게 됐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 사회와 역사에 대한 지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공유하며 진지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바그너는 현실의 유대인과 음악 속의 유대인을 마음속으로 구분했음이 분명합니다.”

바렌보임은 2001년 7월 7일 예루살렘에서 열린 베를린 국립오페라단의 콘서트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주했다. 히틀러가 총애하던 바그너의 음악이 이스라엘에서 처음 공연된 날이었다. 이는 이스라엘 내에서 엄청난 파장과 논란을 몰고 왔다.

“미국은 진정으로 이민자의 사회이고 언제나 그래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어요.…긍정하고 단결하는 것, 그렇게 해서 어떤 새로움에 대한 추구를 억압하는 것이 미국과 미국의 역사에 부합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사이드)

사이드는 서구 중심주의를 날카롭게 지적한 ‘오리엔탈리즘’(1978)의 저자답게 열린 시각으로 세계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두 사람은 바그너, 쇤베르크, 리스트, 슈트라우스, 모차르트 등을 오고가며 음악에 관해 화려한 담론을 펼치지만, 음악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에 대한 이해와 음악에 대한 해석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거장들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음악가 바렌보임과 문화비평가 사이드가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정착을 위해 체결된 오슬로 협정을 두고 각자 의견을 밝히는 대목에서 우리는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 거침없이 통하는 대가들의 지적 경지를 엿볼 수 있다.

“모든 일에서 내용과 그 내용이 필요로 하는 시간 사이에는 태생적인 절대적 관계가 있습니다.…오슬로 협정이 제구실을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협정의 추진력, 다른 말로 속도나 템포가 그 내용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바렌보임)

“오슬로 협정이 실패하게 된 근본 원인은 문서로 작성된 텍스트가 실제 상황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마치 거대한 산맥을 쳐다보면서 그중 단 하나의 산만을 조그만 종이조각 위에 그려놓고도 마치 산맥 전체를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사이드)

특히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서, 정체성을 타자의 편에 두어야 한다”(사이드)라고 강조하는 대목에 이르면 두 대가가 생각하는 ‘진정한 세계화’ 앞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화’가 왜 빛이 바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음악을 중심에 두고 펼쳐나가는 두 사람의 대화는 서양음악에 대한 기본적 소양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따라잡기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태생적 문화적 배경을 넘어 타자의 견해를 왕성하게 ‘소화’해 내는 두 거장의 대담을 바라보는 것은 흔히 맛보기 어려운 기쁨이다. 원제 Parallels and Paradoxes: Explorations in Music and Society(2002).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다니엘 바렌보임

-194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독일 잘츠부르크, 이탈리아 로마 등지에서음악 수업

-프랑스 파리관현악단 음악감독

-미국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1992년∼현재 독일 국립오페라단 음악 감독

●에드워드 사이드

-1935년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출생

-이집트 카이로에서 성장

-미국 하버드대 문학박사

-현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영문학·비교문학)

-저서: ‘오리엔탈리즘’ ‘문화와 제국주의’ ‘권력, 정치, 문화’ ‘에드워드 사이드 자

서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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