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停戰 50돌]<下>한반도 냉전극복의 길

지난 반세기 동안 어렵게 유지되어온 정전협정 체제는 이제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이를 정비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일방적인 정전협정 무력화 움직임 및 북-미 평화협정 체결 주장으로 남북한은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할 접점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과연 현재의 정전체제를 극복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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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도전받는 정전협정
- <上>우리사회에 끼친 영향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시각차=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됐으나 실질적인 협상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정전체제를 마무리짓기 위한 첫 시도는 1954년 제네바에서 열린 6·25전쟁 참전국간의 정치회담이었지만 이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97년 12월부터 99년 8월까지 6차에 걸쳐 개최한 4자회담 역시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북-미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의제로 논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문제 삼아 회담 속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이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평화협정을 한국을 배제한 가운데 북-미간에 논의,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조약 서명자(signatory)와 조약 당사자(party)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것이 국제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마크 클라크 대장이 정전협정에 서명했을 때 그는 미군사령관이 아닌 유엔군사령관 자격으로 서명했다. 미국은 16개 참전국의 일원에 불과하므로 설령 앞으로 북-미간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해도 이는 두 나라 사이의 새로운 쌍무협정일 뿐,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

평화협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평화협정 체결에도 불구하고 분쟁이 지속되거나, 협정 체결에 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었다.

중동전쟁 이후 체결된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과 미국-베트남 평화협정이 대표적 사례.

4차 중동전쟁 이후 체결된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79년 3월)은 적대적이었던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했다. 양국은 이를 기초로 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했으나 유대인과 아랍인이 모두 성지로 여기는 예루살렘 문제에 대한 이견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 중동 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일부 진전을 거두고 있음에도 테러가 끊이지 않는 등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베트남 평화협정(73년 1월) 체결은 미국과 공산 월맹간의 전쟁을 종식시켰지만 결국 베트남의 패망과 적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특히 미국과 월맹간의 비밀협상에 베트남이 배제됐기 때문에 베트남은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연합국간에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은 대표적인 평화협정의 하나이지만 나치 정권이 배상을 거부하면서 1933년에 파기됐다. 결국 평화 유지는 실패했고,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도 막을 수 없었다.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길=중앙대 제성호(諸成鎬·법학과) 교수는 “한반도 평화라는 명목 하에 서둘러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다간 오히려 안보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해 평화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평화협정이라는 문서만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당사국간의 정치적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남북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평화협정은 기본적으로 적대행위 종료, 점령군 철수, 압류재산 반환, 포로 송환 등의 일반조항과 손해배상, 영토의 할양, 요새의 파악 등 특수조항으로 구성된다. 한국외국어대 이장희(李長熙·법학과) 교수는 “과연 남북이 50년 전의 시시비비를 따져가며 이 같은 평화협정 요건을 협의할 수 있겠느냐”며 “남북이 전쟁 종결선언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나머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평화협정 체결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불안전한 정전협정도, 불가능해 보이는 평화협정 체결도 아니라면 어떤 방식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넓은 의미에서 군비통제를 포함한 전쟁억지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평화통일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로 나가는 과정에서 평화체제 구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상호교류와 외교관계 수립 등은 적대행위를 실질적으로 종식시키는 만큼 남북은 실질적 교류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적대국가들은 평화협정이 아닌 국가간의 관계 정상화 조치를 통해 적대관계를 해소한 사례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과 연합국 48개국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51년 9월 조인)에 참가하지 않은 구 소련, 폴란드, 체코는 일본과 국교회복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전쟁 상태를 공식 종결했다.

제 교수는 “남북한이 진지한 교류협력과 함께 정치군사적 신뢰관계를 쌓아 가면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세계 주요 평화협정 사례
	캠프데이비드협정	파리평화협정	오슬로평화협정	베르사유조약
체결 당사자	이집트, 이스라엘	미국, 월남, 월맹, 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제1차 세계대전 연합국과 독일간 개별적 체결
체결시기	1979.3.26	1973.1.23	1993.9.13	1919.6.28
체결 배경	4차 중동전쟁 결과 이집트의 휴전요청	부패한 월남정권에 대한지나친 군사지원에 따른 미국의 부담	캠프데이비드협정 이후 전면전 중단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패배에 따른 파리평화회의 결과
평화협정 보장장치	안정 보장을 위한 유엔비상군(UNEF) 주둔 및합동위 설치	국제통제감시위원회 설치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단계적철군	독일 군비감축 및 군축
협정 성공-실패 요인	미국 등 제3국의 중재 및 평화정착 감시검증 장치 마련(성공)	공산월맹을 남겨둔 채 미군이 일방적 철수. 효율적인 감시 검증장치 미비. 1975년 4월 베트남 패망	이스라엘이 약속한 영토반환 지연으로 인티파다(민중봉기) 시작. 동예루살렘 주권 문제 미해결	지나친 배상금(330억달러) 지급으로 인한 독일의 불만 고조. 나치 등장후 군비증강에 대한 검증 실패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목숨걸고 조국山河 지킬겁니다”▼

“반세기 전 목숨을 바쳐 이곳을 지키신 할아버지처럼 저 역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조국의 산하를 사수할 것입니다.”

정전 50주년을 이틀 앞둔 25일 오전 강원 인제군 모 육군 부대의 대공초소. 장준용(張埈용·22.사진) 일병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 북쪽 지역을 감시하는 곳이다.

“야음을 틈탄 적기의 침투 위협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습니다. 대공 경계근무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군사분계선(MDL)에서 불과 1.8km 떨어진 전방 지역에서 경계근무 중인 장 일병에게 정전 50주년의 감회는 남다르다. 50여년 전 6·25전쟁에 참전했던 그의 할아버지가 1951년 바로 이 지역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사병으로 이 일대의 여러 전투에 참가하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로부터 전쟁의 참상과 할아버지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죠. 빛바랜 사진첩 속의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옵니다.”

이 같은 가족사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처럼 장 일병도 입대 전엔 ‘전쟁’이나 ‘휴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TV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일이나 먼 남의 나라 일 정도로 생각했죠. 또 지금의 평화는 당연한 것이고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전방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그는 정전의 의미를 절감하게 됐다. 힘든 근무로 심신이 지칠 때도 포연이 자욱한 전장에서 조국을 지켰을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힘을 낸다고 그는 말했다.

“입대 직전 할머니께서 ‘할아버지가 항상 널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할아버지께서 늠름한 모습의 손자를 보고 자랑스러워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는 일부 젊은 세대의 맹목적인 반미감정이나 북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북한은 여전히 우리의 빈틈을 노린다는 냉엄한 현실을 모두가 되새겼으면 합니다. 지난해 서해교전이나 최근 발생한 비무장지대(DMZ)내 북한군의 총격사건과 같은 무력 도발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닐까요.”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反戰페스티벌’등 南-北-美 기념행사 다양▼

정전협정 50년을 맞아 한국 미국 양국에선 26, 27일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한국전쟁 참전국인 뉴질랜드의 헬렌 클라크 총리도 방한해 25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26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참배하는 등 여러 행사에 참가한다.

정전협정 체결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로 부르는 북한도 27일 대대적인 군중집회 행사를 열 예정이다.

정전 50주년 기념행사 예정
행사	일시	장소	내용
휴전 50주년기념식	27일오후5∼8시	서울 용산구전쟁기념관 광장	국방부 의장대 시범, 기념식, 상징조형물 제막식 등
정전협정 조인기념식	27일 오전10시	경기 파주시 판문점	오후 10시엔 서울 남산에서 불꽃놀이
반전·평화 청년 페스티벌	27일 오후	여의도공원	연날리기 대회
한국전쟁참전용사 방한	26일	국가별 참전기념비	재향군인회, 참전 21개국에서 참전용사 1000여명 초청
헬렌 클라크뉴질랜드 총리 방한	26일27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서울 유엔사령부	참배휴전협정 50주년 기념식 참석
한국전 전몰용사 추도식	27일(현지시간)	워싱턴 DC한국전 참전기념비	정전협정 조인기념식 행사도 함께 진행
한국전 참전용사 퍼레이드	27일(현지시간)	하와이 호놀룰루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