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카루소'…‘神내린 목소리’ 천재 테너의 일대기

  • 입력 2003년 7월 25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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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루소가 캐리커처로 그린 자화상.사진제공 웅진북스
카루소가 캐리커처로 그린 자화상.사진제공 웅진북스
◇카루소/하워드 그린펠드 지음 김병화 옮김/243쪽 1만6000원 웅진북스

1897년 젊은 테너 카루소는 오페라 ‘라보엠’ 출연에 동의를 구하러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의 저택을 방문했다. 노래를 듣고 나서 푸치니는 말했다.

“누가 자네를 내게 보냈는가, 하느님인가?”

엔리코 카루소(1873∼1921)는 살아 있는 신화였다. 오늘날에도 ‘카루소 전집’이 음반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푸치니 ‘서부의 아가씨’, 칠레아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등 수많은 걸작 오페라가 그의 목소리를 염두에 둔 작곡가들의 펜 끝에서 만들어졌다.

푸치니 등 예술가 전기 전문필자인 저자는 눈에 띄게 호의적인 시각이 간혹 드러나지만, 사실에 바탕을 둔 꼼꼼한 필치로 대성악가의 일대기를 엮어나간다.

카루소의 음성은 모든 음높이에 걸쳐 비로드같이 빛났다. ‘라보엠’ 출연 중 베이스인 데 세구롤라의 목이 쉬자 그는 관객들 몰래 베이스 아리아 ‘외투의 노래’를 립싱크해 데 세구롤라가 갈채를 받아내게 만들기도 했다.

당대의 대성악가들은 그와 함께 노래하는 것을 즐겼고 ‘카루소와 함께 할 때 실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난기도 빠지지 않아 뜨거운 소시지를 쥔 채 무대 위에서 당대의 대소프라노였던 넬리 멜바의 손을 덥석 잡아 ‘잊혀지지 않는 밤’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사랑한 사람은 그를 저버렸다. 아내인 아다는 어느 날 운전사와 집을 나가버렸다. 마침 카루소가 노래하게 된 배역은 아내의 부정(不貞)을 알아차리는 오페라 ‘팔리아치’의 주인공 카니오였다.

그는 불이 쏟아지는 듯한 음성으로 ‘웃어라 팔리아초’를 노래했다. ‘쇼는 계속되어야’만 했다.

늑막염에 걸린 그는 미국 생활을 접고 고향인 나폴리로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노래 ‘카루소’의 수수께끼 같은 가사가 그의 마지막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소렌토만(灣)이 보이는 낡은 테라스, 그는 미국에서의 밤들을 떠올린다… 그대, 너무도 사랑하오, 이젠 피를 녹일 덫이 되었지만.’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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