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사람들]<上>기초생활보장 대상선정 ‘구멍’

  • 입력 2003년 7월 24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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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고단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생겨나고 있다. 원래 가진 게 없는 데다 경제난까지 겹치면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도 힘겨워 하는 사람, 중병이 들었지만 병원 문턱 넘기가 힘든 사람, 갑작스러운 사고로 노동력을 상실한 사람…. 게 중엔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일부 사회복지전문가들은 이를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기도 한다. 사회안전망은 이런 사람들이 최소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막아주는 그물망 역할을 해야 하지만 현실을 보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주요 사회안전망의 현주소와 개선 방안을 3회에 걸쳐 점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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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에 사는 노모 할머니(75)는 몇 년째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끼니는 인근 교회에서, 잠자리는 가까운 경로당에서 해결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 할머니는 정부에서 생계 지원을 못 받고 있다. 그에게 부양능력이 있는 외아들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들은 외환위기 때 어머니의 전세금까지 빼내 갔지만 결국 사업에 실패했다. 그 후 지금까지 연락마저 없는 상태다.

빈곤 계층에 최저 수준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2000년 말부터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 계층이 적지 않다. 기초생활보장제가 최저 수준의 사회안전망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락조차 없어도 부양의무자?=현행 기초생활보장제는 부양의무자를 직계 혈족과 그 배우자, 함께 사는 2촌 이내 혈족으로 정해놓았다. 직계 혈족은 위로는 부모와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등이고 아래로는 자녀와 손자녀, 증손자녀, 고손자녀 등으로 한계가 없다.

최근 가족이 해체되면서 부모를 부양하지 않거나 연락조차 끊긴 자녀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정부는 자녀가 부모 부양을 거부하거나 기피할 때도 기초생활보장제도 혜택을 받도록 보완했지만 실제로는 자녀의 부양능력이 판단기준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직계 1촌을 절대적, 나머지는 상대적 부양의무자로 이원화해야 한다”며 “절대적 부양의무자의 능력 판단기준인 월소득도 본인과 부모의 최저생계비를 합한 금액의 120% 미만에서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보장 대상자 감소=국비와 지방비로 생계비 등을 지급하는 기초생활보장제 대상자(수급자)는 5월 말 현재 134만7000여명으로 지난해 평균(138만8000여명)보다 4만1000여명 줄었다.

복지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정부가 올해부터 기초생활보장제 대상자 선정기준으로 소득인정제도를 적용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소득인정제는 소득평가액(근로소득 등에서 장애인연금 등을 제외한 것) 외에 일반재산의 4.17%, 금융재산의 6.26%, 승용차의 100%를 월소득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당초 복지부는 소득인정제가 실시되면 5000가구, 1만명 정도가 탈락하는 대신 2만5000가구, 5만명이 추가로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柳貞順) 소장은 “기초생활보장제 시행 직전 생활보호대상자는 154만명이었지만 시행 첫 달 149만명, 지난해 말 135만명으로 계속 줄고 있다”며 “정부가 소득인정제 실시로 수급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한 것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2000년 이후 경기 회복으로 빈곤층이 감소했고 소득과 재산에 대한 전산망 및 현장 점검이 강화돼 수급자가 줄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갑작스러운 빈곤은 무대책=최근 인천에서 어린 자녀 3명을 숨지게 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은 주부 손모씨(34)의 경우 기초생활보장제가 적용되는 극빈층은 아니었다. 급격하게 가난해져 궁핍에 시달리는 ‘신(新)빈곤층’으로 볼 수 있다.

신빈곤층은 일할 능력과 의사가 있지만 일단 실직하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거나 장기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말 현재 임시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51.6%에 이른다.

소득이 기초생활보장제 지원 기준(4명 가족 기준 월 102만원)의 120%에 해당하는 ‘차상위 계층’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학계는 차상위 계층이 130만여명, 기초생활보장제 신청에서 탈락한 빈곤층이 189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태수(李兌洙)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빈곤 상태에서 벗어난 뒤 1년 안에 다시 빈곤 상태로 전락하는 확률이 60%에 이른다”며 “정부는 사회적 일자리를 빨리 마련하고 긴급구호제도를 도입하는 등 신빈곤층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이재명기자 ej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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