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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안세영/기업을 바다 너머로 쫓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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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안세영/기업을 바다 너머로 쫓지마라

입력 2003-07-24 18:31수정 2009-10-1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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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업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해외로 나가는 이야기가 단연 화두다. 단순한 임금 인상을 넘어 노조의 경영 참여, 집단소송제, 주5일 근무제 등을 볼 때 도저히 이 땅에서는 기업하기 힘들고 할 기분도 안 난다는 하소연이다. 이에 대한 노조나 진보세력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젠 툭하면 공장 문 닫고 해외로 나가겠다고 협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계가 소리를 높이는 공장 해외 이전이 단순한 엄포에 불과할까.

▼결국 피해의 몫은 젊은 실업자들 ▼

모든 시야를 한반도에 고착시키고 있는 현 정권 핵심의 진보세력과 노동계가 명심해야 할 현실은 지구촌시대의 기업은 ‘철새 기업’이라는 점이다. 과거 영국이나 아르헨티나 등의 경험이 말해 주듯 해외 투자는 기업이 호전적 노조와 반기업적 정부에 맞서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노동자에게 파업할 권리가 있고 친노조적 정부에 반기업적 정책을 펼칠 명분이 있다면 오늘날의 기업에는 기업하기 좋은 외국으로 철새처럼 날아갈 날개가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는 정부가 밖으로 나가려는 기업을 억지로 붙잡아 둘 수도 없다. 더구나 우리 옆에는 눈에 불을 켜고 외국 기업을 모셔 가려는 중국이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중국법인 매출은 국내의 절반 이하였다. 그러나 요즘 추세로 가면 앞으로 중국법인의 매출 규모가 더 커질 전망이다. 시장 규모, 노동비 등에서 중국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기업으로선 구태여 한국 땅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오늘날 글로벌기업은 생산의 3분의 2 이상을 해외 공장에서 한다. 이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글로벌화이지만 국민경제 입장에서는 기업 탈출이다. 물론 노동자에겐 일자리의 해외 유출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생산인력 5만7000여명을 해외에서 고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한 해에 40만개의 서비스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간다고 비상이 걸렸다.

이 같은 일자리 해외 탈출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새로 일자리를 찾는 20대 젊은층일 것이다. 최근 청년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2배 이상인 것이 우울한 앞날을 암시한다. 반면에 강성 투쟁으로 기업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가진 노동자’의 일자리는 당분간은 무풍지대일 것이다. 기업으로선 거센 반발이 따르는 이들의 일자리를 줄이기보다는 새로운 일자리를 해외에서 만드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역설적인 현상이다. 이 정권의 창출을 돕고 노동운동을 이해해 준 세력이 20대인데, 엉뚱하게 그 피해를 자신들이 먼저 보는 것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이 현상은 정부나 기득 노동계 모두에 좋지 않다. 좌절하는 젊은 실업자가 늘어나면 우리 사회는 ‘가진 노동자’와 ‘못 가진 노동자’간의 갈등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3%대로 내려잡았다. 그러나 정부 눈치를 안 보는 외국기관은 1%대의 성장을 점치고 있다. 어찌 보면 단순히 성장이 둔화되고 경기가 침체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된다. 다시 경기가 좋아지고 기업이 투자해 주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기업의 해외 탈출이다. 경제를 이끌어 나갈 기업이 대거 해외로 나가버리는 것은 소득 2만달러를 향해 달리는 한국경제호가 견인 엔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이것이 진정한 한국경제의 위기다. 지금 우리는 단순한 경기침체와 구조적 기업탈출간의 엄청난 차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못 가진 노동자’ 위한 배려를 ▼

정부가 요란하게 깃발을 든 ‘동북아 경제중심’의 첫 발걸음은 우리 기업을 해외로 내몰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네덜란드식 노사관계도 좋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업이 이 땅에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한국에 투자하려는 유럽 기업이 네덜란드식 노사관계를 받아들일까. 현명한 노조 지도자라면 한번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서로 화합해 기업을 이 땅에 머물게 하고 노사가 공존공영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지금 기업을 해외로 내보내고 영국같이 산업공동화의 공백을 외국인투자로 메우려 한다면 언젠가 영국 노조처럼 ‘무노조 무쟁의 각서’를 써줘야 하는 수모를 겪을지도 모른다.

안세영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교수 syahn@cc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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