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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고백 4차 공판 김근태 의원 최후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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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고백 4차 공판 김근태 의원 최후진술

입력 2003-07-24 16:22수정 2009-09-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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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3일, 양심고백을 결행하기에 앞서 정말로 무척 망설였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지나간 일을 들쑤셔내는 것도 걱정되었지만, 양심고백 결과 현실정치 세계에서 사실상 완전히 왕따 당할까봐 두려웠습니다.

역풍은 참으로 쓰라렸습니다. 대선후보경선을 중도에서 사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백을 망설였던 것은 후원금 모금한도가 그렇게 넘은 것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몰랐으니까 몰랐다고 하면 되는 것 아냐, 그러다가도 어쩐지 책임을 회계책임자에게 떠넘기려는 태도 같아서 못마땅하였습니다.

고백하는 마당에 조잔하게 보일 것 같아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일종의 희극같은 정치현실 때문이었습니다.

선거인단만 7만명, 잠재적 선거인단 숫자로는 150만이 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단지 5천만원 갖고 전국선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코미디였습니다. 지출 한도는 3억원이라고 중앙선관위는 지침을 전달했고요. 민주당 선관위는 대통령 본선거 기탁금의 절반인 2억5천만원을 기탁금으로 내라, 여당의 경선후보로 나오니까 정치인으로서 자신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니까 그만큼은 내야 한다, 그래도 국민경선 비용에는 어림도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두로, 그리고 문서로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대선 후보 경선 등록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의지가 약한 정치인으로 낙인찍힐까봐 고민하다가 등록했습니다.

2억5천만원 내고 등록하고 나니까 앞이 캄캄해 보였습니다. 돈도 없었지만 내가 왜 정치를 하는 것인가 하고 자신에게 묻고 또 묻고 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양심고백하고 뒤이어 대선후보 경선을 사퇴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스럽고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시간이 약이더군요. 시간이 가니까 쓰라림이 조금씩 나아져 갔습니다.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쓰라린 고백을 했습니다.

대선후보 경선자금은 밝힐 수 없다, 자료도 다 폐기해 버렸고 기획비용, 홍보비용을 넣고 보니 합법적 틀을 지킬 수 없었다, 그리고 경선을 위한 후원금 모금 제도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며 국민적 요구가 되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면 저의 양심고백이 이러한 흐름에 작지만 의미있는 한 계기가 되었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올해로 저는 정계에 입문한지 8년이 됩니다.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좌절감과 패배주의를 이겨내고 민족적 자신감을 가지고 세계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반도를 달군 ‘붉은악마’와 ‘촛불시위’는 우리 민족이 지닌 가능성과 에너지의 상징이었습니다. 우리는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세계가 놀랐습니다.

그러나 거의 변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전쟁이냐 평화냐. 민족 전체의 생존이 걸린 엄중한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우리 국민과 정치지도자들이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전쟁논리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려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위험한 상황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정치에 입문한 후 저 개인적으로는 문제의식을 갖고 고민해왔습니다. 우리민족의 새로운 좌표와 출구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산업화와 민주화과정에서 보여준 우리 민족의 역동성을 낭비시키지 않고 어떻게 새롭게 결집시킬 수 있을까,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 정치 속에서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문제 때문에 시달려왔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이성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과 현실적으로 추구하는 내용이 불일치하는 모순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칙과 상식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면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해지도록 만드는 야만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습니다.

꿈과 이상을 지키려고 하면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왕따당하고 비웃음거리가 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정의와 진실, 희망은 거처를 잃게 됩니다.

재판장님!

이런 야만을 그냥 둔 채로, 저만을 예외로 해달라는 ‘선처’를 간청할 생각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양심고백’으로 인해서 저는 혹독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저의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입법부에 몸담고 있는 저는 이 법정에서 내려질 사법부의 결정을, 선택을 존중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책임질 것입니다.

재판장님,

그러나 이 재판이 반드시 밝혀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사회적 위선’과 대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모두가 다 아는 비밀인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둘러싼 참으로 비현실적인 ‘제도적 기만’과의 싸움에 제가 나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치의 이중성’과 ‘사회적 위선’을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 정치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의 마음과 지혜를 통합해 낼 수 없습니다.

국민의 현실적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나라의 미래를 개척하는 정치 본연의 역할을 결코 제대로 수행해 나갈 수 없습니다. 책임있는 정치인들이 먼저 신의 정치자금에 대해서 정직하게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국민의 이해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조건도 있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위선’과 동거하면서 책임있는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허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이중성’과 동행하는 한 개혁도, 미래도 없습니다. 이것은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결단이 필요할 뿐입니다. 네가 하면, 나도 하겠다거나 네가 하지 않으면 나도 하지 않겠다는 주장, 심지어 나는 하지 않겠지만 너는 하라고 하는 생각에 저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실망스런 일입니다.

모두가 다 아는 비밀을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지도자의 자리에 계속 서있다면 그 공동체는 황폐해집니다. 진실이 박대당하는 공동체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중성과 위선을 강요하는 잘못된 정치관행의 질곡으로부터 무엇보다 저 자신을 구출하기 위해 행동하고 투쟁할 것입니다.

물론 이 순간에도 힘겨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해보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두려운 것은 이 재판의 결과에 따라 저 김근태가 입게 될지 모를 불이익에 있지 않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정직한 사람을 비웃고, 용기를 가지고 양심과 현실을 일치시키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좌절과 환멸에 빠뜨리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심사숙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교활하지 못한 실수’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진정한 용기와 열정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고 판단해주실 것을 요청드리고 기대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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