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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두 아들 사망]“정신적 지주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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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두 아들 사망]“정신적 지주 사살됐다”

입력 2003-07-23 19:02수정 2009-09-2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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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장남 우다이와 차남 쿠사이를 사살한 미군 작전은 이라크인의 제보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사살 소식이 전해진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총을 쏘며 반기는가 하면 일부 인사들은 “반드시 생포해서 죄과를 물었어야 했다”는 반응도 보였다고 외신이 전했다.

이라크 주둔 미 당국은 하루 뒤인 23일 전쟁 이전 수준의 전력공급과 형사법원 운영 재개, 개정 교과서 배포 등 이라크 재건 60일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급습 작전=미군의 작전이 벌어진 모술은 바그다드 북부 390km 떨어진 이슬람 수니파의 세력 근거지 중 하나로 전후 미군의 후세인 잔당 소탕작전이 본격적으로 펼쳐지지 못했던 곳이었다.

외신은 이날 아침 일찍 우다이와 쿠사이가 모술 시내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을 작전이 펼쳐진 호화 빌라 인근에 잠복해 있던 미군 정보원들이 비디오로 촬영한 후 미군이 투입됐다고 전했다. 오전 9시경 미군 일부가 빌라의 수색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곧이어 최정예인 제101공중강습사단 소속 200명의 병력이 증파됐다.

이어 빌라 안에서는 기관총과 로켓포를 사용한 저항이 6시간 동안 계속됐다. 빌라를 포위한 미군도 헬기를 동원해 20발 이상의 미사일을 쏘아 빌라와 인근 가옥 2채를 완파했다.

외신은 후세인의 두 아들 소재를 제보한 이는 호화빌라의 소유주로 ‘부 이사’ 종족의 족장 셰이크 모하마드 알 자이단이라는 설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전쟁 전 자신이 후세인 일가의 친척임을 밝혀 후세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구타당한 적이 있다고 외신은 덧붙였다. 후세인의 두 아들에게는 각각 현상금 1500만달러가 걸려 있는 상태여서 자이단씨가 제보자임이 사실일 경우 그는 최대 3000만달러를 수령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반응=사살 소식이 전해지자 우다이 소유의 한 방송국 PD인 알라 하메드는 자신이 우다이에게 전기봉으로 고문당했던 사실을 털어놓으며 “그를 생포했더라면 내가 나서서 고문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그러나 모술 일대의 이라크인들은 미군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미군에 대해 저주와 비방을 퍼붓기도 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게릴라 활동 위축 전망=후세인 두 아들의 사살은 이라크 내에서 활동해오던 후세인 잔당들에게 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아들들은 전쟁 직전까지 정규군과 민병대를 지휘하고 있었으며 전후 미군에 대한 게릴라전에는 이들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사망으로 미군을 괴롭혔던 게릴라전의 기세가 수그러들 것이라고 이라크의 새로운 실력자 가운데 하나인 아흐마드 찰라비가 내다봤다. 또한 미군들의 사기 진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사망은 그간 궁지에 몰렸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도 힘을 실어줬다. 부시 대통령은 22일 이들의 사망에 대해 “후세인 정권이 끝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환영한다”고 말했다

한편 BBC방송은 사망 소식 이후 이라크 원유 수출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국제 원유가가 대략 5% 하락했다고 전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늑대' 우다이 - '독사' 쿠사이▼

“끝났어, 이제 다 끝났어….”

4월 바그다드 함락을 지켜보던 사담 후세인은 이렇게 탄식했다. 그리고 그는 함께 가겠다고 매달리던 두 아들에게 “흩어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이별을 고했다.

그러나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39), 차남 쿠사이(37)는 22일 결국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쿠사이는 우다이를 제치고 후세인의 후계자로 지목될 만큼 권력지향적인 인물이었다.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잔혹한 고문과 처형 등으로 악명 높았던 이라크 정보기관의 최고책임자이기도 했다.

91년 걸프전 당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으나 이후 시아파 봉기를 잠재우기 위한 잔혹한 고문과 대규모 숙청 등을 주도해 아버지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2000년에는 집권 바트당 군사조직까지 맡았다.

우다이도 권력 순위에서 동생에게 밀렸으나 여전히 엄청난 부와 권력을 휘둘렀다. 이라크 국내 최대 일간지 및 방송사 등을 소유했으며 페다인 민병대의 대장으로 반(反)후세인파 인사 제거에 앞장섰다.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으며 친척을 살해하기도 했다. 또 88년에는 후세인이 신임하던 보디가드를 살해해 스위스로 잠시 쫓겨나기도 했다.

96년 바그다드 시내에서 스포츠카를 몰고 가다 반대세력의 총격으로 총탄이 척추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한 뒤 지팡이를 짚고 다니게 됐다. 평소 잔혹하고 냉정한 행동 때문에 우다이는 ‘늑대’, 쿠사이는 ‘독사’로 불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22일 사살된 두 사람의 시신은 바그다드 국제공항으로 옮겨졌으며 곧 미국으로 보내질 예정이다. 시신의 신원 확인과 관련해 이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라크의 전직 고위관리가 우다이의 몸에 있는 흉터를 육안으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측은 이미 후세인의 DNA 참고용 샘플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 이에 따라 이 두 사람에 대한 DNA 샘플을 채취해 유전자 검사를 통한 최종 신원 확인에 나설 것으로 밝혀졌다. 외신 종합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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