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태훈/한총련 수배해제 '원칙의 혼란'

  • 입력 2003년 7월 23일 18시 57분


코멘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수배자 해제 문제를 둘러싸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법무부와 행정자치부 등 정부 기관간, 또 법무부 내에서도 장관과 실무자간 이견이 노출되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이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총련 대의원 자격을 이유로 수배된 경우 우선적으로 수배에서 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발언은 한총련 가입을 제외하고는 실정법 위반 사실이 없는데도 수배자 명단에 오른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수배에서 풀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러나 검찰의 일선 실무자들은 장관의 발언은 한총련 간부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수배를 받게 됐는지에 대한 실상을 모르고 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법무부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파악된 150여명의 수배자 대부분은 한총련 가입(국가보안법 위반) 이외의 다른 실정법 위반 혐의로 수배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불법 폭력 시위 등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집회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사실이 적발돼 수배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도 “수배자 가운데는 집시법 등 다른 위법 사실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이를 뒷받침했다.

문제는 단순 가입을 이유로 수배된 사람들 중 상당수가 한총련 의장 등 핵심 간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주로 불법 집단행동의 배후로 지목돼 사법 당국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수배조치를 내린 경우다. 따라서 폭력 등 별건의 위법 사실이 없는 경우지만 단순한 한총련 가입자는 아닌 것이다.

물론 법무부도 이 같은 세부적인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수배자를 일률적인 기준으로 처리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방안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주무 장관이 논란을 빚을 발언을 한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강 장관은 올해 5월 한총련 학생들의 5·18 불법시위 직후에도 “한총련 관련자에 대한 수배 해제 논의를 당분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면서도 “사법처리가 반드시 엄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 혼란을 불렀다. 사법부는 한총련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아직도 이적단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수배자 해제 논란에서 당국이 명심해야 할 것은 선심 쓰듯 ‘수배를 풀어주겠다’고 하는 것보다 ‘관용도 법의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베풀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태훈 사회1부기자 jeff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