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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박성호/‘프라이버시의 종말’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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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박성호/‘프라이버시의 종말’ 원하나

입력 2003-07-22 19:04수정 2009-10-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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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개월간 골목길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시범 운영한 서울 강남구 발표에 따르면 CCTV의 방범효과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설문조사에 답한 2587명의 주민들 중 85%도 CCTV의 추가 설치에 찬성했다. 이에 따라 강남구는 올해 말까지 267대의 CCTV를 더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CCTV 없이도 治安 가능해야▼

그러나 골목길에 CCTV를 설치하는 것에는 일말의 불안이 없을 수 없다. 우선 프라이버시나 초상권 침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강남의 골목길 등 공공도로에는 강남 사람들만 다니는 게 아니다. 또 강남 거주자 모두가 CCTV 설치에 동의한 것도 아니다. 도대체 범죄예방을 위해 또 다른 인권을 침해해도 된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반면 공공도로란 사적 생활공간이 아니라 다중(多衆)의 눈길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에 프라이버시 침해가 성립될 수 있는 게 아니란 반론도 만만찮다. 이미 도로상에는 속도감시장치가 설치된 지 오래다. 은행과 슈퍼마켓에서는 거동이 수상하건 말건 모든 사람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다. 그러니 골목길과 같은 공공장소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프라이버시란 근대성의 산물이다. ‘개인의 탄생’과 더불어 출현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으로 말미암은 권리이다. 가령, 베르사유 궁전에는 복도라는 게 없다. 그래서 방과 방을 직접 통해야만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조차 몰랐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범죄가 증가하고 나날이 흉포화하는 오늘날 “공공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CCTV로 인한 프라이버시가 다소 침해된들 무슨 문제냐”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방향을 달리해서 보면, CCTV로 인한 편익 뒤에는 길고 짙은 그림자가 뒤따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당 15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간 강남구의 CCTV는 360도 회전이 가능하며 12배 이상의 줌인(zoom in) 기능을 갖추고 있어 500m 앞까지 볼 수 있는 고성능 장비다. 마음만 먹으면 골목길의 행인뿐 아니라 커튼이 열린 창가나 아파트 베란다를 엿볼 수도 있다. 도로에 접한 공원에 모이는 사람들의 행색과 누가 누구를 만나는지도 확인할 수 있는 성능이다. 따라서 CCTV를 누군가가 다시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중 삼중의 상호 체크 시스템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렉 휘태커가 ‘프라이버시의 종말(The End of Privacy)’이란 책에서 우려했듯이 방범 감시장치로 개발된 것이 지역주민들의 일상을 위축시키고 정치적인 반대자나 파업에 참가하는 노조원들을 겨냥하는 데 사용될지 모르는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따지고 보면, 강남 주민들의 안전한 일상에 대한 열망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바람이 CCTV 설치를 통해 실현돼야 하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로 인한 폐해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죄는 치안이 허술한 곳으로 옮아가기 마련이다. 어쩌면 조만간 강북과 경기 일원에도 CCTV 설치 바람이 불게 될 것이고, 이런 현상은 전국으로 퍼져나갈지도 모른다.

▼감시체계, 민주주의 흔들수도▼

개인의 생명과 신체, 그 밖에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대한 위험을 방지해야 하는 것은 ‘질서행정’의 첫째가는 책무지만 이러한 공권력일수록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침해할 우려가 없도록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이런 본질적 제약요소가 느슨해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들은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을 비롯해 거리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뒤 범죄발생률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현지 특파원 보도를 즐겨 인용한다. 서구 사회가 도입한 것이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표피적인 서구 추수(追隨)현상을 엿볼 수 있다. 오히려 감시카메라를 도입하지 않으면 치안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그런 사회는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텐데도 말이다.

박성호 법무법인 '세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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