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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1만여명 自殺… ‘벼랑끝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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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1만여명 自殺… ‘벼랑끝 사람들’

입력 2003-07-22 18:44수정 2009-09-2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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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카드빚에 몰린 엄마가 세 자녀와 함께 투신자살’ ‘시간 강사 생활이 힘들어서…’.

극단적인 행동양식인 ‘자살’이 스스럼없이 선택되고 있다. 불과 수백만원의 카드빚이나 부모의 꾸중, 일시적인 분노 등 제3자가 보기에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경제 및 취업난, 사회적 소외 등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탓”이라고 입을 모았다.

▽급증하는 자살=지난 한해 동안 집계된 자살자는 총 1만3055명. 자살자가 급증했던 1998년 외환위기 직후의 1만2458명보다 다소 늘어난 수치다.

자살자는 2000년 1만1794명, 2001년 1만2277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울소방방재본부 구조팀의 올 상반기 자살 관련 출동 건수도 199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151건에 비해 30%가량 증가했다. 민간 사회복지단체 ‘생명의 전화’의 자살 관련 상담 건수도 올 3월 58건에서 5월에는 88건으로 급증했다.

20일에는 사회아동보호시설을 피해 친구 집에서 생활해 오던 한 초등학생이 자신을 찾아온 보호시설 관계자를 피해 달아나다 아파트 10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학생은 “말을 듣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데려가겠다”는 보모의 말을 전해들은 뒤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17일에는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손모씨(34·여)가 세 자녀를 고층 아파트 계단에서 창문 밖으로 집어던지고 자신도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빚과 일용직으로 번 수십만원의 돈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 손씨가 외부에서 받은 도움은 이웃주민들에게 간간이 빌린 돈 몇 만원이 전부. 손씨는 이 사회에 자신이 기댈 곳이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댈 곳 없는 사회적 약자들=전문가들은 최근 일련의 자살사건이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사회가 고도화할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개인주의 물질주의가 팽배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더욱 자주 노출된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여기에다 사회적 소외현상도 심화돼 예전처럼 정이나 친분을 통해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받는 해결방식도 과거와는 달리 쉽게 이뤄질 수 없게 됐다는 것.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柳錫春) 교수는 “통계적으로 사회가 격변하고 규범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 자살수치가 가장 높았다”며 “최근 자살이 늘고 있는 것은 사회가 안정되지 않고 격변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이 상대적으로 개인의 능력이나 경제력, 인맥 등이 빈약한 빈곤층, 어린이, 사회적 소외계층에 먼저 일어나고 ‘내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이들을 자살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수원시 자살예방센터 조준필(趙俊필·아주대 의대 교수) 센터장은 “자살자들은 충동을 느낄 때 본능적으로 도움을 받으려 하지만 이들의 고민을 들어줄 대상이나 지역사회의 도움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예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자살이나 위기 문제로 상시 상담을 하는 곳은 자살예방센터와 기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생명의 전화’ 등 불과 2, 3곳 정도. 그러나 이들 기관의 업무는 대부분 전문성이 없는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고 있는가 하면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자살관련 사립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215억원의 별도 예산을 편성해 자살 등 정신질환 연구 분야에 투자하기도 했다.

조 센터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자살예방센터가 1년에 500만원과 소정의 사회복지기부금을 지원받는 것이 전부”라며 “자살을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치유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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