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어느 전교조 교사의 ‘고소장 숙제’

  • 입력 2003년 7월 22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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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교장을 형사고발하기 위한 학부모 위임장을 받아오라고 ‘숙제’를 낸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교장도 교사와 똑같이 스승일 터인데 교사들이 제자로 하여금 교장을 고발하라고 시킨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전교조의 지나친 투쟁성을 다시 한번 드러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사제(師弟) 관계가 전과 달라졌다지만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해서는 안 될 일’이 분명히 있다. 제자가 스승을 고발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교사가 학생들에게 교장을 고발하도록 부추겼다니 실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일을 놓고 일부에서 ‘내부자 고발’이나 ‘비리 척결’을 위한 것이라고 둘러대는 것은 문제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학교교육정보시스템(NEIS) 문제는 교내 비리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지 않은가.

전교조 교사들은 교장이 NEIS를 강행해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 학부모가 자발적으로 고소용 위임장을 써주었으면 몰라도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교장을 고발하도록 시킨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녀를 맡고 있는 교사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마지못해 위임장에 서명했을 수도 있다.

누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 해당 교사들이 자신들이 벌이는 NEIS투쟁을 위해 학생까지 고발에 동원하는 등 비교육적인 수단을 사용한 점은 명백하다. 그들은 교육현장을 더욱 황폐화시킨 것이다.

이번 일은 최근 NEIS를 둘러싸고 갈등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어느 학교에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학교 내부가 교육 주체들 사이에 형사고발이 오가는 흉흉한 분위기라는 것은 우리 교육이 더 이상 나빠질 수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를 언제까지 이렇게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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