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얻어 분양받은 계약자들 전세침체에 속앓이

  • 입력 2003년 7월 22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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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를 구입한 회사원 임모씨(33)는 요즘 심한 자금난에 빠졌다. 전세를 놓아 중도금과 잔금을 한목에 해결하려던 재테크 전략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

분양받을 당시 1억5000만원이었던 집값은 현재 2억1000만원으로 6000만원이 올랐다. 단순계산으로는 40%의 고수익을 올린 셈. 하지만 1억5000만원 중 실제 들어간 자기 돈은 계약금 3000만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그가 현재 은행에 다달이 내고 있는 이자는 70만원. 매달 월급의 절반가량을 고스란히 은행에 내고 있다.

임씨는 은행 융자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가 부담스러워 팔려고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시세보다 2000만∼3000만원 내린 급매물이 아니면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

그는 “전세가 나갈 때까지 기다리자니 이자가 부담스럽고 싼 값에 내놓자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역(逆)전세난 심화=서울 등 수도권 전세시장이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전세 수요를 찾지 못한 집주인들이 곤경에 처했다. 세입자가 방을 빼려 해도 집주인이 다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

특히 이자후불제나 중도금 무이자 융자 등 건설업체가 제공하는 금융서비스를 받아 아파트를 산 사람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들 대부분은 1, 2년 전 부동산 경기가 활황일 때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계약금만 내면 건설사가 제공하는 금융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입주 시점에 되팔거나 전세를 놓으면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하락해 매매는 물론 전세수요까지 사라지면서 자칫 빚더미에 앉게 될 처지에 놓였다.

부동산컨설팅업체 세중코리아 김학권 사장은 “이자후불제 등 건설사의 금융혜택이 2000년 말부터 본격화됐기 때문에 입주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면서 “전세수요가 살아나지 않을 경우 상당수 투자자들이 금융 파탄에 직면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왜 그러나=부동산 시세정보제공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전세금 월간 변동률이 작년 10월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한 시세정보업체 조사에서는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45%선까지 떨어졌다.

전세시장이 이처럼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올 들어 입주 물량이 대거 쏟아진데다 저금리와 건설사 금융혜택 등을 이용해 세입자들이 대거 매입자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

올 상반기에 입주한 서울 지역 아파트는 2만9961가구. 하반기에도 140개 단지에서 3만 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여기에 작년 말까지 신축이 많았던 다세대, 다가구, 주거용 오피스텔 등 전세 대체 물량을 합치면 과잉 공급 수준이다.

실제로 5월 서초 삼성 래미안 1129가구가 쏟아진 서초구 서초동 일대는 전세금이 급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입주 당시 3억∼3억5000만원이던 34평형 전세금이 현재 2억6000만∼3억원으로 5000만원 이상 떨어졌다. 인근 삼풍아파트와 삼호가든 역시 4월에 비해 최고 9000만원까지 떨어진 전세물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외에도 입주물량이 많았던 성북구 종암동 하월곡동, 구로구 신도림동 역시 전세금이 4000만∼5000만원가량 떨어졌다.

닥터아파트 최현아 팀장은 “내집 마련을 계획 중인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전세를 끼고 집을 사두려는 사람이 많다”면서 “구입 전에 전세 수요와 평형대를 잘 따져보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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