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경기부양책보다 더 중요한 것

  • 입력 2003년 7월 20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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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미국 상원은 톰 하킨 의원이 발의한 어린이 노동 저지(沮止)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동 착취’를 막기 위해 외국에서 미성년 노동자가 만든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방글라데시가 초점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월마트를 위해 옷을 만들던 방글라데시 섬유공장은 미성년자들을 내보냈다. 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던 아이 가운데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가 행복해진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상당수가 푼돈이라도 벌던 직장을 잃고 거지나 매춘부로 전락했다.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 사례를 통해 좋은 의도로 출발한 행동이 때로 어떤 나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강조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省察)이 빠진 감상주의의 부작용과 폐해를 보여주는 슬픈 기록은 인류 역사에 수없이 널려 있다.

최근 한국경제를 생각하면 우울하다. 성장의 주요 축인 내수와 투자는 얼어붙었다. 수출증가율 역시 점차 둔화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올 2·4분기 경제성장률이 1.9%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연간 성장률도 3%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치(數値)다.

큰소리만 치던 정부도 심각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하반기 경제운용계획 발표 때 ‘불황’이란 표현이 처음 나왔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금리 추가 인하, 기업투자 세액공제 확대 등 재정 및 통화부문의 경기부양책도 쏟아졌다.

이런 대책으로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지금 경제를 옥죄는 핵심 변수는 시중에 돈이 덜 풀려서가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 하려는 심리’가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의 3대 주체 가운데 생산과 투자를 주도해야 할 기업은 반(反)기업 정서와 노사갈등, 정부규제에 지쳐 힘이 빠져 있다. 공장 문을 닫거나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려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일하는 사람’은 적고 게다가 주눅까지 들었다. 얼마 전 만난 대기업 고위 임원 K씨는 ‘5년에 대한 기대’를 접은 기업인이 많다며 걱정했다.

소비의 주체인 가계(家計)는 어떤가. 경제사회적 비관심리 확산과 고용불안, 신용불량자 급증으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불확실성에 대비해 각 경제주체가 소비와 투자를 줄이고 절약에 나서면서 내수가 더 위축되고 디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하는 ‘절약의 역설(逆說)’이 나타날 조짐도 보인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 카드도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대규모 경기부양책 성격을 내포한 160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재정은 여유가 없다. 더 이상의 금리인하도 쉽지 않다. 금융시장에는 카드빚 급증과 카드사 부실이란 잠재적 시한폭탄이 도사리고 있다.

외환위기 때만 해도 튼튼한 재정이 버팀목이 됐다. “다시 일어서자”는 국민적 공감대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식 장기불황 조짐에 남미식 사회분열까지 겹친 지금은 ‘속병’이 더 깊어졌다. 안보 리스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어디에서 물꼬를 터야 할까. 현재로선 탈출구가 하나밖에 없어 보인다. 생산 투자 고용의 핵심 주체인 기업의 꺾인 사기를 살려 연쇄적으로 소비와 수출에 활기를 불어넣는 선(善) 순환이 가능하도록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이여. 사회정의와 계층간 형평성은 좋지만 한번쯤 방글라데시 어린이들의 비극을 떠올려 보라. 기업 개혁을 하더라도 자기 자식의 몸에 메스를 대는 의사의 입장에 서서 고민하라. 그리고 목청 높여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일만은 제발 삼가라. 더 이상 시행착오를 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권순활경제부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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