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놓고 민간단체-정부기구 갈등

  • 입력 2003년 7월 20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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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지방분권’에 대한 특별법안 마련 문제를 둘러싸고 추진 주체들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다.

지방분권을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만든 실질적 단체인 지방분권 국민운동(상임대표 김형기·金炯基 경북대 교수)은 20일 “지방분권을 노 대통령의 의지에만 맡길 수는 없다”며 정부와 다른 입장을 표명했다.

또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위원장 김병준·金秉準)의 지방분권 추진은 전문성이 떨어지고 정파적인 성격이 강해 구조적 변화가 시급하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갈등은 1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지방분권 국민운동,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의 지방분권 정책간담회에서 표면화됐다.

민간단체인 국민운동측은 전국 대표자회의에서 확정한 특별법안(지방분권특별법, 지역균형발전특별법안)을 제출했으나 정부측의 김 위원장은 “대통령과 정부가 생각하는 지방분권 안에는 10분의 1도 미치지 못한다”며 “이 정도 법안으로는 지방분권이 불가능하다”며 국민운동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국민운동측 관계자는 “국민운동이 제시한 특별법안을 깔아뭉갰다”며 분개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지방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과 권한을 줘버려라’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이고 우리(정부)는 ‘치고 나갈’ 생각”이라며 “국민운동측이 제출한 특별법안은 지방분권의 이념이나 기구 정도를 나열한 수준”이라고 깎아내렸다.

이에 대해 국민운동측은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면 참으로 부적절한 표현”이라며 “미국에 대한 시각이나 노동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자주 바뀌는 것을 보면 대통령의 의지라는 것을 신뢰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운동 관계자는 “국회를 통과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중요한데도 대통령의 의지 운운하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비난했다.

정부와 국민운동이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부분은 앞으로 지방분권을 실질적으로 누가 추진하느냐는 추진 주체 문제. 국민운동은 특별법안에서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위원회(9명)를 새로 구성하되 위원 가운데 4명은 ‘반드시’ 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장단의 추천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지방분권위원회는 현재의 기구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국민운동의 특별법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민운동측은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지방분권을 ‘국가적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파적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현재의 지방분권위원회는 전문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국민운동측은 현재의 지방분권위원회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국민운동 관계자들은 “지금의 지방분권위원회는 대통령선거를 도왔던 인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측면이 강하다”며 “지방분권에 대해 대통령 의지 운운하면서 지방분권위원회를 이대로 끌고 가려는 발상은 진짜 수구적 태도”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지방분권 국민운동측은 지방분권위원회의 추진계획에 맞서 별도로 9월 정기 국회에 전국 기초 및 광역 자치단체와 지방의회 등을 중심으로 의원 입법을 추진키로 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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