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애가 性폭행범…” 부모 쉬쉬…女兒성추행 절반이 10代

  • 입력 2003년 7월 20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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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동성폭력피해가족모임’ 사무실. 이곳에는 요즘 하루 평균 7명의 성폭력 피해 어린이 가족들이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상담을 받고 있다.

이 모임의 송영옥(宋英玉) 대표는 “최근 미성년자가 가해자인 성폭력 범죄가 부쩍 늘었다”며 “하루 평균 걸려오는 20여통의 상담전화 중 7, 8통 정도는 초등학생, 중학생에게 당한 피해자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성년자에 의한 성폭력 범죄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관련 대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미성년 가해자의 경우 특별한 치료나 교육을 받지 않으면 잘못된 성의식을 가지고 성장해 재범의 우려가 높다는 것.

최근 이 사무실에 한 피해자 가족이 밝힌 가해자 A군의 사례는 미성년 성추행 가해자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A군은 지난 1년 남짓 만에 21명의 여자 어린이를 성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미성년 가해자를 방치할 경우 A군처럼 같은 범죄를 되풀이할 확률이 90% 이상”이라며 “특별한 교육과 정신과 치료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등 선진외국의 경우 성폭력 범죄 사실을 인지하면 교사가 경찰 통보와 함께 상담 조치를 취하고 부모가 치료보고서를 반드시 제출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학교나 가정에 이들에 대한 특별 교육이나 정신과 치료를 의무화하는 제도가 없어 대부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상담치료의 경우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성장기에 그럴 수도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특히 13세 미만 가해 어린이의 경우에는 형사입건 대상이 아닌 데다 수사가 쉽지 않아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정신과 치료는커녕 가해 어린이와 피해 어린이의 격리조차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아 피해 어린이가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이동진(李東振) 박사는 “일본의 경우 어린이 가해자의 경우도 국가 기관인 아동상담소에서 처분을 결정해 적절한 교육과 치료를 강제한다”며 “우리도 범죄예방 차원에서 국가가 비용을 부담해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강덕지(姜德祉) 범죄심리과장은 “소년원에 보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자기 나이에 맞는 성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교육과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여아 21명 성추행… 학교선 우등생 두 얼굴의 모범생▼

한 지방 대도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A군(16·고교 1년)이 14명의 여자 어린이를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것은 올 5월.

미국에서 권위 있는 국책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A군은 각종 경시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항상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우수한 학생. 하지만 그는 체포 당시 이미 지난해 저지른 7건의 성추행 범죄로 보호관찰을 받던 중이었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평균 95점을 웃도는 모범생이었고 집에서는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큰아들이었지만 잘못된 성의식과 호기심은 그를 성추행 범죄자로 만들었다.

A군이 성충동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 인터넷 성인 광고물을 보면서부터.

호기심과 충동을 참을 수 없었던 A군은 “공부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7, 8세 여자 어린이들을 아파트 계단, 놀이터 등 한적한 곳으로 유인해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

5개월 동안 7명의 여자 어린이를 성추행한 A군은 결국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한 피해 어린이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혀 소년법원에서 2년간의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A군의 부모는 그의 범행에 큰 충격을 받고 A군을 다른 학교로 전학시켰지만 “청소년기에 호기심으로 저지른 일시적인 사건”으로 치부하고 그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A군의 보호관찰을 담당했던 공무원은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할 것을 권했지만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도 있고, 아이에게 흠이 될 것을 꺼려 부모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애지중지 기른 큰아들인 데다 주위의 평가가 좋아 부모들도 일회적인 실수로 여기고 가능하면 잊어버리고 싶어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나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A군은 올 1월부터 5월까지 또다시 14건의 성추행 범죄를 저질렀고 폐쇄회로(CC)TV에 찍힌 사진과 피해 어린이들의 증언으로 구속돼 결국 교도소에 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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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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