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부모의 권리

  • 입력 2003년 7월 18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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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스위스 대법원은 부모가 자녀를 훈육하기 위해 때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용인할 만한 정도를 넘어서면 범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의부(義父)가 9세, 11세짜리 자녀를 10차례가량 때리거나 발로 차며 귀를 잡아당긴 행위에 대한 판결이었다. 이에 앞서 지방법원은 두 아이의 어머니와 3년 동안 함께 사는 의부로서 아이들이 버릇없이 굴면 훈육을 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0번이나 때린 것은 지나쳤고 특히 발로 찬 행위는 자녀교육 수단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며 지방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어린이를 때리는 것을 형사 범죄로 취급한다. 구미 국가에서 어린 자녀를 땡볕 주차장의 차 속 혹은 어른이 없는 빈집에 장시간 방치해놓았다가는 주민들에 의해 고발돼 곤욕을 치르게 된다. 친부모라고 할지라도 자녀의 건강을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서적 성적 폭력, 가혹행위 및 유기행위를 하면 아동학대죄에 해당한다. 이들 나라에서 내 자식이라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는 큰코다치게 된다. 어린이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주부가 세 자녀를 아파트 14층에서 떨어뜨리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남편이 가출한 이후 이 여인은 파출부로 생계를 이어왔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오죽하면 그랬겠느냐”고 오열했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며 안타까워한다.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사회 안전망을 제대로 갖추어놓지 못한 국가 사회의 책임을 따질 수도 있다. 이웃과 벽을 쌓고 사는 대도시의 삭막한 인심과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탓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자녀를 부모 없는 고아로 만들지 않으려는 모정에서 나온 극단적인 행동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행동은 엄연한 살인행위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지 않은가. 어머니의 살의를 알아챈 자녀들이 “엄마, 나 죽기 싫어”라고 외쳤다고 한다. 죽음의 공포에 맞닥뜨린 어린이들의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아프다. 뚜렷한 생계 대책 없이 자식을 대여섯명씩 낳던 시절에도 ‘제 먹을 것은 제가 타고 난다’는 말로 위안을 삼으며 자녀를 키웠다. 어린이들은 생명력이 강하다. 걸음마를 하는 유아도 일어섰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외부 세계와 반응하며 사고와 적응력을 키운다. 그런 기회를 앗아가 버릴 권리가 부모에게는 없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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