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22>작은 배려 환한 거리

  • 입력 2003년 7월 18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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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생긴 일이다. 미국인인 듯한 50대 초반의 여인이 인도에 올라온 오토바이를 막아서고 있었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듯한 청년은 그 외국인을 피해 이리저리 빠져나가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여인은 오토바이 핸들을 붙잡고 “NO, NO”를 연발하며 거칠게 항의하고 있었다. 차도로 내려서지 않는 한 절대로 양보할 것 같지 않았다.

출근길이라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지만 누구도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못 본 일로 하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솔직히 외국인만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치고 싶었다.

만일 그 여인이 한국인이었더라면 출근길에 오토바이를 가로막고 서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그 순간 교통질서 하나라도 정해진 법을 소중히 지켜야 함을 일깨워주는 외국인의 모습에서 감명을 받았다. 그 외국인은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타이르듯 단호하면서도 자상하게 질서의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 그 청년에게 “이제 그만 차도로 내려가라”고 말했으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 청년은 외국인과 나에게 번갈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기를 2∼3분가량, 팽팽한 긴장 속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오가는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이기지 못한 청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오토바이를 돌려 차도로 내려갔다.

질서란 서로 양보하는 데서 생긴다. 조금씩만 서로 양보하면 이 세상은 한결 밝아질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기란 쉽지 않다. 양보하는 마음가짐과 함께 때로는 손해 보는 일까지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을 위한 배려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의 실천이며 자비행이 아닌가.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나 약간의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늘도 길을 오가는 많은 사람 가운데 예수님과 부처님을 만나 뵐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조원오 교무/원불교 문화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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