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광기의 역사'…이성은 왜 광기를 감금시켰나

  • 입력 2003년 7월 18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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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에서 미셸 푸코는 정상적 질서 바깥에 있는 사회적 ‘타자’(광인)를 통해서 정상적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탐색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광기의 역사’에서 미셸 푸코는 정상적 질서 바깥에 있는 사회적 ‘타자’(광인)를 통해서 정상적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탐색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광기의 역사/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869쪽 3만8000원 나남출판

자기 옆에 미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여야가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노사가 경제적 이해 때문에 맞서고, 남성과 여성이 불평등 때문에 다툴 때 서로의 차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맞서는 이들도 미친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결같은 태도를 취할 것이다. ‘미친 사람을 정신병원으로!’

소명의식이 투철한 의사는 정상인을 대표해 정신병자들을 모조리 정신병원에 수용해야 정상인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정상인들의 행복을 위해 광인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신병원은 어떤 곳인가? 왜 그 병원은 다른 병원과 달리 감옥처럼 쇠창살로 환자와 세계를 격리시키며 환자 자신의 의사에 따라 퇴원할 수 없을까? 어떤 사람들이 그 병원에 수용되는가? 의사는 어떤 치료법을 쓰는가? 정신병원은 치료하는 곳인가, 아니면 ‘환자’를 격리시키는 곳인가?

푸코는 정상적 질서 바깥에 있는 사회적 ‘타자’(광인)를 통해서 정상적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밝히려 한다. 그는 기존의 지식과 권력을 감추고, 정상인들이 편하고 당연하게 느끼는 사고와 실천에 대해 ‘다르게’ 사고한다. 곧 그는 중세부터 서구사회가 광인을 어떻게 다뤄 왔으며, 어떻게 해서 오늘날의 정신병원이 만들어졌는가를 추적함으로써 어떻게 서구적 이성이 타자들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작용을 하는지 파헤친다.

정신병원이란 제도는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떻게 기능을 하는가? 정상인이 볼 때 광인들은 정상인의 질서를 수용하지 않는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존재다. 따라서 이성적 과학은 광기를 정상과 ‘구분’하고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광인을 격리시킨다. 곧 광인을 정신병자로 규정하는 정신병리학의 담론이 형성되고, 의사와 환자의 불평등한 관계가 구축된다. 권위로 무장한 의사는 정신병자들에게 ‘정상’의 질서와 가치를 가르친다. 이때 광인은 말할 수 없고 치료하는 의사에게만 말할 권리가 있다.

미친 사람에 대한 감금과 수용은 이성의 타자에 대해서 이성의 권위를 실현시키려는 것이다. 이처럼 이성의 전략은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자기의 동일성, 즉 어떤 불순함도 없는 순수함을 마련한다. 이처럼 이성에 의한 해방은 표면적으로는 정상인의 해방이면서 동시에 숨겨진 측면에서 타자들에 대한 억압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작가 겸 평론가인 모리스 블랑쇼가 지적하듯이 이 책은 서구적 이성의 역사가 실제로는 비(非)이성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의 역사 바깥에 있는 것을 부정함으로써 이룩돼 왔음을 망각한 역사임을 보여준다. 곧 푸코의 작업은 서구 합리주의와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고고학적 탐사다.

이 책은 근대 서구인이 어떤 지식의 배치를 통해 오늘날의 ‘자기’를 마련했는지 분석하는 푸코의 초기 작업을 대표한다. 기존에 번역본이 나와 있었지만 부분번역 때문에 안타까움을 느껴 왔던 독자들에게 이번 완역본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공들인 번역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자료, 낯선 주제와 건조한 듯한 문체, 기존 사고를 벗어난 새로운 문제제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는 쉽지 않다. 독자들은 곳곳에서 암초에 부닥치겠지만 이 지적 모험에서 미지의 대양을 항해하는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센 물결이 밀려올 때면 포세이돈(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이 아니라 푸코의 전복적 사고의 힘을 느끼지 않을까? 푸코의 도움을 받아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배는 그 풍랑을 무사히 지나갈 것이다.

양운덕 고려대 강사·서양철학 yw081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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