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강민희/황학동 벼룩시장 '슬픈 뒷모습'

  • 입력 2003년 7월 17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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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희
얼마 전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세상과 스스로 작별한 홍콩 스타 장궈룽(張國榮)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그를 사랑했던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의 애도의 물결 속에는 필자도 있었다. 이런 슬픈 사연을 접하면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아픔이 전해져오는 것만 같아 덩달아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럴 땐 자리를 박차고 ‘희망 찾기’에 나서야 한다.

누구든 지친 일상을 만회할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겠지만, 필자가 그동안 가장 쉽게 삶의 에너지를 충전했던 곳은 그 이름도 유명한 ‘황학동 벼룩시장’이다. 서울 중구 청계천8가 삼일아파트 뒤편으로 500여개나 되는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다. 일명 ‘청계천 도깨비 시장’. 아무리 오래 되고 망가진 물건이더라도 이곳 상인들 손을 거쳤다 하면 감쪽같이 새것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빙 둘러선 사람들이 신기한 모양의 골동품을 만져보고 쳐다보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필자 역시 그들과 하나가 된다. 또 이 시장의 어디를 가도 이름과 맛, 향기가 서로 다른 군것질거리들이 행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기름통에 반죽을 뜯어 넣으며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있는 리어카 행상의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서, 땀에 흠뻑 젖어 목청껏 외쳐대는 장사치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본다. 인생사의 번거로움을 단숨에 날려 버릴 만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그런 벼룩시장이 지금 청계천 복원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니 안타깝다. 서울시에서 상인들을 위해 송파구 장지동에 새 상가를 마련해 준다고는 하지만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닐 테고, 교통은 더욱 불편해서 이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훌쩍 줄고 말 것이다.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옛것과 새것이 섞이고 바뀌고 하는 것이 생소한 일은 아니지만,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남는 것 같다. 다시는 찾지 못할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느낌이랄까. 이제 요술 호리병 같은 황학동 벼룩시장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찾아야겠다.

강민희 공연기획 ‘팀영 엔터테인먼트’ 대표

서울 성동구 성수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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