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IMF가 젊은 갑부 만들었다

  • 입력 2003년 7월 17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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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이재웅▼김택진▼나성균▼강방천▼오상수▼김형순▼(가운데)이해진동아일보 자료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이재웅▼김택진▼나성균▼강방천▼오상수▼김형순▼(가운데)이해진
동아일보 자료사진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는 금융권과 정보기술(IT) 두 분야에서 많은 신흥 부자들이 탄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 하나는 나이가 대부분 30, 40대로 젊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 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이다.

메리츠증권 고유선 이코노미스트는 이 두 부류를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미국식 신경제 체제를 대폭 받아들이면서 등장한 새로운 부자 세력”으로 평가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1980년대 장기 불황을 겪으며 한때 세계 최고 경제 대국의 자리를 일본에 넘겨줬던 미국. 그러나 미국은 92년 빌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면서 ‘신경제’를 기치로 10년 장기 호황에 들어서게 된다.

신경제란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벗어나 IT와 금융권을 중심으로 경제를 부흥시키려 했던 클린턴 정부의 경제정책. 미국은 이후 증시와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활발한 투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IT 분야의 과감한 기술 개선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켰다. 80년대 5∼6%였던 설비투자는 93년 이후 11%를 계속 웃돌았고 하이테크와 소프트웨어 등 IT 분야의 연간 성장률은 1991년 이후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약 6배인 20%에 육박했다.

미국 부자 서열에 변화가 생긴 것도 이 무렵의 일.

포브스지에 따르면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1991년까지 미국 최고의 부자는 오리온영화사, 빌보드지 등을 거느린 메트로미디어사의 최대 주주 존 클루지였다.

그러다가 92년 들어 미국 IT업계의 상징인 빌 게이츠가 63억달러의 재산으로 처음으로 미국 부호 순위 1위에 올라섰다. 93년에는 미국 최대 주식투자자이며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버크셔 헤서웨이 최대주주 워런 버핏이 73억달러의 재산으로 1위에 올라섰다.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신 경제의 핵심인 IT와 금융 두 분야에서 미국 최고 부자를 잇달아 배출한 것.

그리고 94년 빌 게이츠가 다시 1위를 탈환한 이후 ‘빌 게이츠 1위, 워런 버핏 2위’의 공식은 지난해까지 9년 연속 이어졌다. 지난해 9월 포브스가 밝힌 두 사람의 재산은 각각 430억달러(약 50조6540억원)와 332억달러(약 39조1096억원)였다.

●한국의 신흥 부자들

98년 이후 등장한 한국의 신흥 부자들도 미국처럼 금융권과 IT업계에서 등장했다. 한국 경제가 금융과 IT 중심의 미국 경제 모델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면서 새로운 신진 세력들에게 기회의 문이 열렸기 때문. IT나 금융은 나이 많은 ‘노련한’ 인맥이 강하게 구축돼 있지 않았던 ‘신천지’여서 새로운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젊은층이 기회를 잡기 유리했다.

주가지수선물 시장에서 수백억원을 번 ‘압구정동 미꾸라지’ 윤모씨, ‘목포 세발낙지’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선물 고수 장기철씨, 97년 말 1억원을 밑천으로 1년반 만에 재산을 150억원으로 불린 에셋플러스투자자문 강방천 전무 등이 스타로 떠오른 것도 이때였다. 모두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신진 세력들이다.

억대 연봉의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도 무더기로 쏟아졌다. 현대증권 정태욱 상무, 굿모닝증권 이근모 전무 등이 연봉 10억원에 육박하는 대우로 증권사 리서치 책임자에 올랐다. 전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도 비슷한 연봉을 받으며 삼성그룹 금융권을 이끌 차세대 핵심 인물로 꼽혔다.

IT 분야에서도 갑부들이 속출했다. 2000년 3월에는 통신소프트웨어업체인 로커스의 김형순 사장이 39세의 나이로 7000억원대 부자에 올랐다. 당시 그의 주식 평가금액은 7533억원으로 이는 개인 보유액으로 한국 증시에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8621억원)에 이어 2위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반도체 장비업체 주성엔지니어링의 황철주 사장도 주식 평가금액이 6000억원을 넘었고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재웅 사장, 새롬기술 오상수 전 사장 등도 30대 나이에 3000억원대 부자에 올랐다.

●경제의 변화와 부자층의 변화

동부증권 장영수 기업분석 팀장은 “한국의 ‘큰 부자’들은 경제 패러다임이 크게 변할 때마다 새롭게 등장했다”고 평가한다.

구한말 농경사회에서는 ‘천석꾼’, 즉 30만평 농지를 갖고 있던 지주들이 대표적인 부자였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직후에는 지주들 가운데 유통, 면사, 정미, 운수업 등에 투자해 초기 자본가로 탈바꿈한 사람들이 신흥 부자로 떠올랐다. 화신백화점 소유주였던 화신그룹 오너 박흥식이 대표적 인물. 1970년대 개발경제가 본격화하자 정주영 이병철 등 제조업 중심의 산업 자본가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98년 IT와 금융 중심의 미국식 신경제가 도입될 때도 새로운 부자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부자’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거품이 꺼지면서 최근 2년 동안 ‘새로운 금융 갑부’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상황. IT분야에서 ‘신흥 갑부’ 등장도 뜸해졌다. 최근에도 기업을 코스닥에 등록하며 수백억원대 주식 평가 금액을 누리는 이들이 있지만, 이미 2000년 무렵부터 장외시장에서 수백억원대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들을 ‘새로 탄생한 부자’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실제 2001년 이후 두 분야에서는 ‘떠오르는 신진 스타’보다 ‘기억으로부터 사라지는 스타’들이 더 많았다.

장 팀장은 “신흥 부자들은 과거 제조업 재벌들에 비해 위기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버틸 만한 자본력이 부족한 데다 동종업종의 세계적인 수준의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며 “앞으로 급변할 경제 환경에 얼마나 신속하게 적응하느냐가 이들이 지금의 부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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