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포럼 전문]"대통령님! 노무현 신당을 포기하십시오"

  • 입력 2003년 7월 17일 14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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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님께

잘 지내셨습니까. 우리 인생에서 가장 격렬했던 순간 중의 하나, 지난번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벌써 일곱 달이 흘렀습니다. 선대위 TV토론대책단장으로 일하며 노무현이라는 이 시대의 불꽃과 함께 나누었던 추억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럴 때는 저의 필력이 부족한게 안타깝습니다만,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민주당의 신당 논의와, 대통령님과 김대중 전대통령의 관계 두 가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생각은 아마도 호남의 정서가 많이 담겼을 겁니다. 2000년 이후 전주를 근거지로 야인의 생활을 몇 년 하면서 저는 객관적 전달, 분석자에서 주관적 판단-행동자로 바뀌었습니다. 현장성을 가미할 수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살면서 서울, 중앙에서 못 보던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사고와 시각, 진리를 보지 못했더라면 상당히 불완전한 사람이 됐을 것이다”는 자신감도 가져 봅니다.

첫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신당 논의를 포기하시란 진언입니다. 여기서 신당이란 분당을 불사하는 이른바 노무현 신당을 의미합니다. 가능하다면 한나라당이 만든 1백50억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이후 적당한 시기에 “분당은 없다”고 공식 선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분당 불사 신당, 이른바 노무현 신당은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왜 신당을 해야 하는지 공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화합, 정치개혁, 전국정당 건설이란 명제 자체는 맞습니다. 그런데 대통령님을 지지한 사람중 절반 이상은 이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도리질을 하고 있습니다.

신당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노무현 정부의 국정 난맥상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지지도 하락으로 숫자화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신당 주체의 헌신없고 희생없는 ‘무조건 신당’ 행태입니다. 세 번째로 국민들은 왜 민주당 간판을 내려야 하는지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말해 국민들은 신당보다 경제 회생, 한반도 평화 정착 등이 더욱 중요한 국정 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2002년 대선의 표심은 무엇입니까. 선거 이후 곰곰 생각해보았습니다만 그것은 반창(反昌)이었습니다. 친노(親盧)보다 반창이 더 컸습니다. 신당은 반창 대결집으로 당선된 당신의 지지 기반을 찢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보아 신당 논의는 반창 세력의 확대는 커녕 친노마저 찢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민주당은 어느 날 돌출한 당이 아닙니다. 87년 평민당 창당 이후 김대중 전대통령과 그의 당은 어려운 사람, 힘없는 사람과 함께 해왔습니다. 기억하실 겁니다. 옛 평민당 시절 당사에 가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소외계층들이 진치고 농성하던 것을. 김대중 전대통령과 동일시되는 민주당이라는 정당은 야당 시절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고 여당이 되어 IMF 경제 위기 극복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한, 여당 시절이나 야당 시절이나 국민을 위해 일했던 유일한 정당입니다

신당파는 그런 평민당, 국민회의, 민주당의 과거 음덕과 싸우고 있고, 그렇다면 그 싸움은 결코 1,2년 사이에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대통령님

현실적으로 당내 강자들, 부패 의혹을 받고 있고 기득권이나 지키려는 상당수 의원들이 맘에 들지 않으실 겁니다. 그렇더라도 당을 깨는 것보다는 맘에 안 들더라도 고쳐서 쓰는게 더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새 대통령이 출현해도 새로 집 짓지 않고 있는 것 고쳐서 쓰는게 더 큰 정치개혁 아닐까요. 우리는 대통령 신당과 정치개혁 구호를 너무 많이 보고 들어왔습니다.

대신 이 건물의 외관을 리모델링하는데 그치지 않고 내부 인테리어까지 싹 좀 바꾸기 바랍니다. 공천 구조, 선거 구조, 당과 개인의 정치자금 구조, 의사결정 구조를 확 바꾸어야 합니다. 새로운 집에서 새 살림하기보다 옛집을 고쳐 새로운 주거 문화, 생활 양식을 만들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구주류 의원 중 상당수, 일부는 신주류에도 있습니다만,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직업이 국회의원인 사람’들에 대한 민주당 지지층의 불만은 하늘을 찌릅니다. 이런 사람들, 국민경선만 제대로 하면 얼마든지 태워버릴 수 있습니다. 그 에너지를 저는 매일 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년 총선의 가장 큰 대결구도는 여야간 대결도, 기성 세대와 386간의 세대 대결도 아닌, 오래 해먹은 사람과 새롭게 하고자 하는 사람의 대결구도가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신당 논의는 이런 ‘직업이 국회의원인’ 사람들의 정치 생명을 역으로 연장시켜 주는 구실이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이제 두 번째 얘기를 하겠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한 얘기입니다. 작금의 한반도 정세를 타파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외교안보 고문처럼 활용하십시오. 그는 그럴만한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외교 안보에 관한 한 그는 식견과 명망을 가진 대한민국의 특급 자원입니다.

올 가을쯤 위기의 절정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되는 북핵 문제, 한반도 정세에 대해 길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외교 안보에 관한 한 김대중 전대통령과 상의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외 교섭 전문가로 활용하십시오. 김 전대통령은 6. 15 3주년 기념 KBS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이 이 중차대한 시점에서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원로를 존중하는 북한의 특성상 김대중 전대통령이 남측 정부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해 지금 언론이나, 외국 대사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 이상으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설득을 할 수 있다면 북한도 변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쟁 불사를 외치는 또다른 한축 미국도 노벨상 수상자인 미스터 김이 미국 조야 인사들에게 직접 한반도 정세와 한민족의 비원을 설득할 수 있다면 부시 행정부의 태도도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나머지 국가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김대중을 꺼림직한 전직 대통령, 은원이 교차하는 퇴직 장인(丈人)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노대통령은 이미 정통성과 정체성을 확보한 대한민국 대통령입니다. 나라 안의 모든 인재를 국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습니다. 외교 안보에 관한한 노무현-김대중의 투 톱 시스템으로 가십시오.

저는 중국을 보며 부러운 것 중 하나가 국가 대사에 있어 덩샤오핑이 장쭤민을 지도하고 장쭤민이 후진타오를 지도할 수 있는, 원로 활용 시스템입니다. 정치가 고급한 나라일수록 이런 게 발달돼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그럴 만한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의 외교 안보 일선 복귀는 그 분이 현실 정치에 얽혀들 여지를 오히려 줄인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외교 안보 활동에 바쁠수록 그를 찾아가 자신의 정치생명 연장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은 면담이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노대통령께서 김 전대통령을 이처럼 ‘모실수록’ 당신의 지지기반은 넓어지고, 김대중을 팔아 뭔가 득을 보려는 사람들은 입지가 줄어듭니다. 문희상비서실장이 과거 94, 95년도에 폈던 지론대로 ‘김대중 총재를 업고 다니십시오.’

제 말씀에 다소 무리가 있거나 무례했다면 이해해 주십시오. 모쪼록 건강하시길.

제헌절 아침, 당신과 함께 일했던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후배 올림

김현종 전주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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