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69…아메 아메 후레 후레(45)

  • 입력 2003년 7월 16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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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손목시계를 보고 말했다.

“이제 5분이로구나, 마침 적당한 시간이야, 만주 국가 한 번 불러볼까. 외적 미영(美英)이 쳐들어오든, 팔로군이든, 신사군이든 이 낙토에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할 것이다. 대일본제국 만세! 대동아공영권 만세!”

톈디네이유러신만저우(天地內有了新滿洲)

신만저우볜스신톈디(新滿洲便是新天地)

딩톈리디우구우유(頂天立地無苦無憂)

짜오청워궈자(造成我國家)

즈유친아이빙우위안처우(只有親愛竝無怨仇)

‘대륙’은 삐익 삐익 브레이크 소리를 내면서 봉천역 홈으로 들어가고, 교사는 아직 열차가 채 머물지 않았는데도 가죽 가방을 옆구리에 껴안고 홈으로 뛰어내렸다.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자는 고리짝을 등에 메고, 소녀는 주머니만 들고 일어났다.

“어머, 짐은?”

“난 이것밖에 없어요…식구들 몰래 나왔거든요.”

“아이고, 지금쯤 걱정하고 계시겠다.”

“하카다에 도착하면 편지 쓸 거예요.”

홈으로 내려서는 순간, 마늘냄새가 코를 찔러 소녀의 입안에 침이 고였다. 일등과 이등 사이에 있는 계단 앞에 물건 파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말없이 대바구니에 담긴 통째로 구운 오리와 닭, 대꼬치에 경단 꿰듯 꿴 산사열매 과자, 수박과 호박씨, 소금에 볶은 해바라기씨, 말린 대추, 설탕에 절인 살구, 너저분한 천에 싼 꽈배기와 구운 떡, 월병, 유탸오(油조: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긴 과자류), 사과, 배, 살구 등의 과일, 그리고 병에 들어 있는 중국차, 고량주, 백주 등을 내보일 뿐이었다.

“맛있기는 하겠는데 시간이 넉넉하니까, 역 앞 식당에서 먹자.”

사냥모 쓴 남자 뒤를 따라 개찰구로 향하는데 몇 명이 츠판러마(식사했느냐), 쉐이꿔(과일) 꽈쯔(수박씨, 호박씨)라면서 따라 왔지만 대부분의 단발머리 소녀와 빡빡머리 소년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와 천진만두가 들어 있는 대바구니를 껴안고 다음 열차가 도착하는 홈으로 줄줄이 옮겨갔다.

개찰구에서 나온 소녀는 거대한 건물이 우뚝우뚝 서 있고, 큰길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봉천거리를 탐닉하듯 바라보았다. 왼쪽에서 따각따각하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리니,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가 다가왔다. 마부가 휙 채찍질을 하며 눈앞으로 지나갔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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