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갈갈이 패밀리와…' 남기남 감독-갈갈이 삼형제

  • 입력 2003년 7월 16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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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비수기인 여름을 맞아 DVD업체들의 할인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의 한 매장에서 고객이 DVD 타이틀을 고르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판매 비수기인 여름을 맞아 DVD업체들의 할인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의 한 매장에서 고객이 DVD 타이틀을 고르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8월 1일 개봉하는 영화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는 KBS2 TV ‘개그콘서트’의

출연진 12명이 총출동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한 또 하나의 관심사는 충

무로에서 ‘빨리 찍기’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남기남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 남

감독은 이주일 주연의 ‘평양 맨발’, ‘피양 박치기’, 심형래 주연의 ‘영구와 땡칠

이’ 시리즈를 만든 감독이다. 남 감독은 15억원의 순수 제작비를 들여 잘나가는 개그

맨 12명의 스케줄을 조정하며 1개월 만에 완성품을 내놓았다. 주인공인 ‘갈갈이 삼형

제’의 박준형 이승환 정종철과 남 감독을 만나 촬영 뒷이야기를 들었다.》

#찍지! 남기남

▽갈갈이 삼형제=아∼,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기자=왜요?

▽박준형(박)=음…, 더 이상의 설명은 불가능해요. 아주, 독특해요.

▽이승환(이)=레디 고! (3초 후) 컷! 도대체 이게 NG인지 OK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니

까요. 모두 어리둥절하고 있으면 감독님이 “자, 다음 장소로 이동!”하고 외치죠.

▽남기남(남)=어떤 연기든 ‘첫 방’이 제일 좋은 거야. 요즘 감독들은 10번 20번씩

NG를 내던데, 필름 아깝게 왜들 그러는지 몰라. 이 많은 배우를 데리고 15억원에 영화

를 찍을 수 있는 사람 나와 보라고 해.

▽정종철(정)=감독님 별명이 왜 ‘찍지 남기남’인 줄 아세요? 대개 15초 정도 분량

의 필름이 남으면 그냥 감아버리잖아요. 감독님은 절대 그러는 일이 없어요. “그걸

아깝게 왜 버리나? 찍지!” 그래서 ‘찍지, 남기남’.

▽이=영화를 찍기로 하고 감독님에 대한 설명을 들었어요. 어린 시절, 우리들의 마음

을 설레게 했던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를 만든 남기남 감독! 여름방학이면 TV에서

막 선전하고 그랬잖아요.

▽박=광고에서 “책받침도 드립니다!”라고 선전해서 엄마 졸라서 ‘쭈쭈바’ 하나

씩 물고 극장 갔던 일이 눈에 선하네요. 요즘 애들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컴퓨터 게임

하니까 그런 기억이 별로 없겠지만 10년 전만 해도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었잖아요.

▽정=화려한 3D 컴퓨터 그래픽에 익숙한 요즘 어린이들이 얼마나 좋아해줄지 조금 걱

정이 되기도 해요.

▽남=무슨 소리! 나름대로 와이어 액션도 들어가고 내 작품에선 좀처럼 쓰지 않는 크

레인까지 동원하며 찍었는데. 코믹 액션은 내 전공이야. 초등학생은 물론 20대 대학생

들도 웃다가 자지러질걸?

▽이=제가 원래 영화배우 지망생이었거든요. 생긴 건 좀 느끼하지만…. 그런데 영화

찍으면서 주변에 “저 영화에 데뷔해요”라고 하면 “어머, 축하해. 근데 무슨 영화

야?”라고 묻더라고요.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라고 하면 다들 표정이 좀….

▽남=어허, 이거 왜 이래. 이 영화가 얼마나 좋은 작품인데. 내 감독인생 30년의 노

하우가 모두 결집된….

▽박=개그맨들은 늘 스스로 웃음거리를 개발하잖아요. 오락프로에서도 대본은 형식

에 불과할 뿐 개그맨의 ‘애드리브’에 의존하죠. 그런데 영화는 남이 써놓은 대본을

읽고 그대로 해야 하죠. 그래서 좀 답답했어요.

▽정=그렇지만 감독님의 배려로 우리들의 즉흥 대사가 많이 녹아 있어요. 적어도 1분

에 한번은 웃을 수 있을 겁니다.

▽남=사실, 이주일이나 심형래는 연기가 돼요. 한 번 넘어져만 줘도 관객들이 웃는다

고. 그런데 요즘 개그맨들은 거의 말로 웃기니까 그걸 연기로 만들어서 화면에 잡기

가 쉽진 않았지.

#영화배우라 불러줘요

▽이=처음 감독님을 뵙고 깜짝 놀랐어요. 60이 넘은 분이라 “이 노회한 감독이 ‘개

그 콘서트’를 알긴 알까” 걱정했는데 어떻게 12명의 이름과 캐릭터를 몽땅 외우고

계세요?

▽남=아, 배우에 대해서 잘 모르고 어떻게 영화를 찍나. 기본이지 기본.

▽박=‘빨리 찍기’의 대가라는 말만 들었는데, 실제로 함께 일하다 보니 정말 그렇

더라고요.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감독님은 영화를 스토리 순서대로 찍지 않고 자기

가 구상한대로 찍기 때문에 배우들이 난감했어요.

▽이=‘갈갈이 삼형제’가 언덕을 내려오는 영화 첫 장면을 찍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감독이 “거기서 힘차게 점프를 해. 뭔가 기쁨에 찬 표정으로”라고 주문을 하

시더라고요. 얼떨결에 시키는 대로 했죠. 나중에 완성본을 보니 그 부분이 엔딩 장면

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아널드도 비켜라

▽정=찍는 걸 보면 이게 어떻게 영화가 될까 싶은데, 정말 신기한 건 완성본을 보면

다 말이 된다는 거죠.

▽박=“그 장면이 어디에 붙어있을까”를 찾아가는 과정이 마치 ‘퍼즐 맞추기’ 같

아요.

▽박=그런데, 우리 영화 개봉 1주일 전에 ‘터미네이터3’가 개봉하는 거 알아?

▽정=야∼, 죽인다. ‘갈갈이 삼형제’와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격돌!

▽이=요즘 애들은 슈워제네거 할아버지가 누군지도 잘 몰라요. 우리가 훨씬 유명하

죠. 아무리 못해도 전국 100만명은 들지 않을까? 사실, 작품성이나 예술성은 기대하

지 말아주세요. 어차피 웃자고 만든 영화인데….

▽남=어허, 아니라니까. 이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내 30년간의 노하우가 담긴….

▽박=영화가 흥행 안 되면, 승환이 네가 누드집이라도 하나 찍어라. ‘헤어누드’라

고 하면서 머리카락 보여주면 되잖아.(모두 웃음)

▽이=코미디보다 더 코미디 같았던 촬영장 분위기가 기억에 남아요. 의상, 소품 등

스태프들이 모두 아버지 어머니뻘 되는 50, 60대였어요. 수전증이 있는 사람도 있었

죠. 스태프가 우리를 챙겨준다는 건 꿈도 못 꿨어요.

▽남=무슨 일을 하든 ‘사람’이 가장 중요한 거야. 난 한 번 쓴 사람은 절대 버리

지 않아. 다음에 내가 작품할 때 부르면 같이 할껴?

▽갈갈이 삼형제=물론입죠!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남기남 감독의 '빨리 찍기' 비결은▼

일반인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충무로에서 남기남 감독은 ‘빨리 찍기’의 전설

로 통한다. 1972년 ‘내 딸아 울지마라’로 데뷔한 이래 이번 작품까지 105편을 찍었

다.

그의 기록을 살펴보면 1983년에는 한해 동안 9편의 영화를 찍었고 1984년 임하룡 이

성미 주연의 영화 ‘철부지’는 5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 1989년에는 1개월 동안 한국

과 미국을 오가며 영화 2편의 촬영을 마쳤다. 당시 미국에서 남 감독을 “허리업

(hurry up) 감독”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있다. 1982년에 만든 ‘여자 대장장이’는

하루에 300컷을 찍었다.

외화수입쿼터를 따기 위해서는 1년에 5편씩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제작해야 했던

1970년대, 해마다 12월만 되면 의무제작편수를 채우지 못한 제작사들은 앞다퉈 그를

찾았다. 이번 영화도 여름방학 시즌에 개봉 시기를 맞추기 위해 남 감독에게 의뢰를

했다는 후문. ‘갈갈이 패밀리와…’는 하루 평균 90컷을 찍었다. 다음은 그의 ‘빨

리 찍기’ 노하우 3가지.

▽스토리 순서와 무관한 몰아찍기

속칭 ‘나까누끼’ 기법을 이용한다. 이는 스토리 순서와 관계없이 한 배우의 장면

을 몰아 찍는 것. A와 B가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고 할 때 A와 B를 번갈아 찍지 않고 A

와 B를 따로 촬영한 뒤 편집에서 붙인다.

▽NG는 나의 수치

모든 연기는 ‘첫 방’이 제일 좋다. 기술상의 문제가 아니면 NG는 허락하지 않는다.

▽한 장면을 찍을 때 다음 장면의 배경을 미리 준비시킨다.

스태프를 2조로 나눠 한 장면을 찍을 때 다음 장면을 준비시킨 뒤 촬영이 끝나면 바

로 이동한다. 배경을 세팅하는 데 드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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