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60년 '침뜸술 외길 전도' 김남수 옹

  • 입력 2003년 7월 15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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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침쟁이 할아버지’를 찾았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웬만한 동네마다 허름한 농가 안방에서 아이의 삔 손목에 “하나도 안 아프다”며 침을 꽂던 침쟁이 할아버지들이 한명씩은 있었다.

‘침구사’ 구당 김남수(灸堂 金南洙·89)옹을 마주하면 우선 그런 침쟁이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침이 주는 향토적 이미지, 없는 사람들과 한동네에 사는 친근한 이웃…. 그러나 김옹은 당당한 현역이다. 1943년 자신의 이름을 딴 남수 침술원을 개원하고 본격적인 침뜸 치료에 나선 지 60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환자를 직접 치료했지만 아직도 매일 8시간 이상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김옹은 일주일에 5일은 무료 진료 봉사 활동에 나선다. 월요일은 정부과천청사, 수요일은 국회, 금요일은 부산 혹은 광주에서, 토·일요일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무료진료소에서 환자를 본다. 유료 진료는 화요일, 목요일 단 이틀뿐이다. ‘배워서 남을 주자’라는 좌우명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매일 8시간 이상씩 환자를 보며 침과 뜸을 전파하고 있는 침구사 김남수옹. 그는 “침과 뜸은 너무 싸서 발달도, 보급도 잘 되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박주일기자

김옹이 단장으로 있는 ‘뜸 사랑 봉사단’은 매년 노인과 장애인 5만여명을 상대로 무료 진료 활동을 펴 오고 있다. 침과 뜸에 관한 한 소매를 걷어붙이고 무료 진료와 대중 교육에 앞장서온 그를 가리켜 ‘현대판 허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김옹은 “내가 허준이라니, 당치도 않다"며 정색을 한다. 그는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은 궁중에서 탕약을 다루는 시의(侍醫)였고, 침과 뜸을 다루던 유명한 시의는 ‘침구경험방’을 지은 허임이라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김옹에게 별칭을 붙이려면 ‘현대판 허임’이라고 해야 맞는 셈인데 이 또한 김옹이 펄쩍 뛸 일이다. 그의 아호 ‘구당’은 뜸집이라는 뜻인데 그가 직접 지었다. 침과 뜸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아호가 아닐 수 없다.

김옹은 요즘 침구사 양성제도를 부활시키는 일에 여생을 걸고 있다. 김옹이 굳이 정부과천청사와 국회에서 무료진료 활동을 하는 것도 관련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포석이다. 이를테면 정책결정권과 입법권을 가진 당사자들에게 침으로 ‘로비’를 하는 셈.

김옹은 1962년 국민의료법이 의료법으로 바뀌면서 침구사 양성제도가 폐지된 뒤 40여년간 침구사법을 부활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왔다. 그런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1979년 10월 25일, 김옹은 당시 김재규(金載圭) 중앙정보부장의 사무실에서 간 질환을 앓던 김 부장에게 침뜸 치료를 하고 있었다. 치료가 끝난 뒤 김 부장이 말했다.

“김 선생님, 고맙소. 선생님의 오랜 노력이 이제 빛을 발할 것 같소. 대통령께서 선생님을 만나주기로 하셨소.”

김 부장을 통해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진했던 김옹은 날아갈 듯이 기뻤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침구사법 부활이라는 자신의 오랜 소망이 이뤄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튿날 10·26 사태로 박 대통령은 세상을 떴고 김옹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는 뒷날 저서 ‘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에서 “그때 평생 가장 큰 좌절을 맛보았다”고 술회했다.

김옹은 80세가 되던 94년부터 무료 봉사활동과 함께 자신의 침뜸술을 전수하는 데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침구사법 폐지로 침구사 대가 끊어짐에 따라 현재 국내에 생존해 있는 합법적인 침구사는 80명인데 그중 실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50여명에 불과합니다. 전통의술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제가 가진 지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수하기로 마음먹었지요.” 김옹이 정통침뜸교육원을 운영하고 ‘인터넷 침뜸학습센터’(www.chimtm.net)를 개설한 이유이기도 하다.

“침은 침구 하나만 있으면 되고, 뜸은 쑥만 있으면 되는, 가장 서민적인 의술입니다. 서민의 건강을 위하는 참 의료인이라면 가장 싼 의술을 보급해야 마땅한데, 지금의 한의학 제도로는 그게 불가능하지요. 침과 뜸은 너무 싸서 발달도, 보급도 안 되는 거예요.”

그는 세계보건기구(WHO)도 뇌중풍 편두통 두통 안면신경마비 신경통 말초신경질환 위염 장염 십이지장궤양 변비 설사 경견완증후군 백내장 등 300여종의 질병을 침뜸으로 치료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침 예찬은 끝없이 이어졌다. “침으로 화상 치료도 합니다. 제 아내가 첫 임상실험 대상자였죠. 만성질환인 당뇨병, 고혈압, 퇴행성질환, 심혈관 질환은 치료가 쉽지 않고 치료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침술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입니다. 높은 치료 효과와 비용 절감이라는 과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게 침과 뜸입니다.”

김옹은 요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후 10시까지 활동한다.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도 쉬어본 적이 없다. 자신도 정기적으로 뜸을 뜨기 때문에 건강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단 한 사람의 환자라도 더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김남수옹은 ▼

-1915년 광산군 하남면(현 광주 광산구) 출생

-1943년 남수 침술원 개원

-서울맹학교 교과서 제정위원 및 심의위원

-세계침구학회연합회 침구의사 고시위원 및 교육위원

-사단법인 대한침구사협회 입법추진위원장

-정통침뜸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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