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뺨치는 쟁쟁한 실력 파리의 명물 '지하철 음악가'

  • 입력 2003년 7월 15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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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지하철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 -사진제공 김동준
파리의 지하철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 -사진제공 김동준
파리를 여행한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추억 중 하나는 아마 메트로(지하철)의 음악가들일 것이다. 메트로 음악가들은 주로 아코디언이나 바이올린과 같은 간단한 악기를 들고 메트로에 올라타 몇 곡을 연주한 후에 옆 칸으로 가거나, 아니면 다른 메트로로 갈아탄다. 10여분간 긴 곡을 연주하고 동전을 받는 음악가들도 있다.

저녁 시간이면 파리 중심인 샤틀레 레 알 역에서 앰프를 의자 삼아 깔고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여가수도 만난다. 그를 중심으로 둥글게 원을 만들어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에 뭉클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끼게 된다. 100%는 아니지만, 이들 대부분은 파리 메트로 공사(RATP)에서 오디션을 받은 뒤 메트로 음악가임을 증명하는 카드를 받는다.

이들은 왜 메트로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일까. 프랑스인들에게 물으면 간단한 대답이 돌아온다. “먹기 위해서.” 그렇다, 먹어야 살고 음악도 연주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 중에는 20kg 가까이 나가는 특별한 아코디언 하나로 비발디의 협주곡과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탄성이 나올 만큼 훌륭하게 연주하는 음악가도 있다. 지하철에서 노래하던 한 가수는 음반을 내고 본격적인 가수로 활동하면서, 메트로역에서 고별 공연을 갖기도 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자주 연주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이브리 지틀리스도 한때 파리의 메트로 연결통로에서 연주를 했다.

최근 파리에서는 이 ‘메트로 음악가’들의 연주를 담은 CD가 등장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제목은 ‘메트로의 음악가들 첫 번째 선곡집-갈아타는 역’.

자기 아이들을 위해 작곡한 노래를 메트로에서 부르기 시작한 라헬, 알제리 태생의 6명의 형제그룹인 세바 등 인기를 얻고 있는 메트로 음악가들의 연주가 한데 담겼다. 오베르역에서 녹음기로 반주를 틀어놓고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마리 헨 왈레는 많은 파리시민들에게 친숙한 ‘성악가’. 그는 이 음반에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의 아리아 한 대목을 담았다.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은 메트로의 기관사. 8호선을 운전하는 장 미셸 그랑장은 ‘음악가들에게 감사를’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실었다. 그는 지하철 기관사이면서 종종 메트로 구내에서 노래도 한다. 메트로의 음악가들은 이번 음반 발매를 기념해 최근 파리 ‘음악축제의 날’에 공연을 가졌다.

프로페셔널 연주자는 아니지만, 음악으로 먹고살고 연주 실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이들을 단순한 아마추어 음악가로만 볼 수도 없다. 파리 메트로가 있는 한, 그리고 이들의 가치를 아는 파리지앵과 관광객들이 있는 한 이들의 연주는 계속될 것이다.

김동준 재불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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