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95>波 紋(파문)

  • 입력 2003년 7월 15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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波 紋(파문)

波-물결 파 紋-무늬 문 革-가죽 혁

錯-섞일 착 遁-숨을 둔 濤-물결 도

한자 ‘皮’는 사슴 따위의 야생동물을 잡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손으로 가죽을 벗기는 모습에서 유래한다. 그러니까 갓 벗겨낸 짐승의 가죽으로 털과 피, 기름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끈적거리고 무거워 입기에도 불편하다. 이것을 가공하여 부드럽게 만든 것이 革(혁)이다. 그래서 皮의 본 뜻은 ‘가죽‘이 된다. 가죽은 몸의 겉에 붙어 있으므로 ‘껍질‘이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석수장이가 돌(石)의 껍질(皮)을 쪼아내듯 하는 것을 ‘破’(깨뜨릴 파)라고 한다면 물(수)의 껍질(皮), 즉 수면 위의 ‘물결’이 波다. 참고로 껍질처럼 두르게 만든 옷(의)이 被(이불 피), 땅(土)이 껍질처럼 주름진 것이 坡(언덕 파)다.

紋은 본디 文자에서 나왔다. 文은 얼핏 봐도 몇 가닥의 실이 얽힌 모습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文의 본디 뜻은 ‘錯畵’(착화·교차된 그림), 곧 ‘무늬’였다. 후에 이놈이 文字(문자)니 文章(문장), 文學(문학) 등의 뜻으로 遁甲(둔갑)하자 ‘무늬’라는 뜻을 담을 수 있는 새 글자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아름다운 무늬는 실로 만들었으므로 ‘(멱,사)’를 덧붙여 ‘紋’자를 만들게 되었다. 이미 수차 설명한 바 있는 한자의 ‘假借’(가차)현상이다. 이처럼 文과 紋이 같은 글자이므로 ‘波紋’은 ‘波文’으로도 쓴다.

波紋은 수면에 일렁이는 잔물결이다. 湖水(호수)나 연못에 바람이 스치면 물결이 일게 된다. 특히 맑은 가을 날,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서늘한데 湖水 위에 잔잔하게 이는 물결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詩人墨客(시인묵객)들이 이를 놓치겠는가. 마치 美人이 눈웃음을 짓는 것과도 같다 하여 ‘秋波’(추파)는 님을 향해 보내는 美人의 ‘눈웃음’이 되었다.

잔잔한 湖水에 바람이 스치면서 이는 물결이라면야 아름답겠지만 느닷없이 날아든 돌덩이로 생긴 물결이라면 이건 波紋이 아니라 波濤(파도)라 해야 할 것이다. 즉시 一波萬波(일파만파)로 퍼져나가 온 湖水의 물을 일렁이게 할 것이니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한 거물급 정치인이 기업인으로부터 巨額(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 하여 波紋이 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장기간의 불황으로 어깨가 축 쳐져 있던 마당에 갑자기 떨어진 돌덩이에 온 사회가 일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정치상황까지 얽혀 政局(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미스럽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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