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대선자금 파문]정대철 살리기 vs 수사외풍 막기

  • 입력 2003년 7월 14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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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가 14일 확대당직자회의를 주재하는 등 당무를 다시 챙기기 시작했다.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등 자신감을 찾은 듯한 분위기다.

이와 동시에 청와대와 당 주류측 중진들의 ‘정대철 달래기’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특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이날 정치자금법 개정 검토를 언급한 대목이 정 대표측을 고무시키고 있다.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항상 해온 일반론으로, 특별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지금 법대로 하면 안 걸릴 정치인이 어디 있느냐”며 “대통령이 연구해보라고 지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고, 민주당은 이를 받아 야당과의 법 개정 협상을 서둘겠다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 때문에 정 대표측이 대선자금 발언에 이어 ‘추가 폭로’ 가능성을 흘리며 ‘버티기’를 하는 전략이 먹혀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당 안팎에서 정 대표 살리기를 위해 검찰에 압박을 넣는 등 치밀하게 구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나서는 것 같지는 않다. 공식 사정라인에서는 오히려 ‘법대로’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자금 관리 등 요직에 있던 당-청 인사들을 중심으로 정 대표에 대한 옹호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권에서는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한 정 대표의 위협에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정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간접 촉구했던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이 13일 정 대표를 만나 ‘사과’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김원기(金元基) 고문이 “내가 만난 정치인 중 인간적으로 정 대표만큼 순수한 사람도 없다”고 정 대표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보낸 배경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당은 물론 청와대 핵심부에 있는 사람들이 검찰에 대해 총체적 조직적 로비를 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그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명되기도 한다.

물론 정 대표의 ‘생존전략’이 성공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 대표는 자신이 굿모닝시티로부터 받은 4억2000만원(경선자금 2억원 포함)이 뇌물이 아니라 정치자금이라는 것을 검찰 출두 전 ‘보증’받겠다는 계산인 듯하다.

그러나 검찰은 “정치권의 목소리에 구애받지 않고 엄정 수사할 것이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청와대 민정라인도 “검찰이 독립돼 옛날과 다르다. 안타깝지만 검찰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정 대표 쪽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며 곤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발끈한 검찰▼

검찰은 14일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에게 전격적으로 소환장을 전달한 뒤 이례적으로 이 사실을 공식 브리핑했다. 경위와 배경까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브리핑 내용을 요약하면 ‘정치권이 검찰을 압박하며 물타기 전략을 구사하지만 정 대표의 혐의는 단순 뇌물수수이기 때문에 정치 싸움에 휘말려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일부 정치인들이 쇼핑몰 분양과 관련한 대형 경제 범죄 사건을 마치 정치적인 사건인 것처럼 몰아가려는 데 대해 통탄한다”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검찰은 특히 정치권 일부에서 이번 수사와 관련해 검찰과 청와대와의 연계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 주말 여권과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 수사 검사가 청와대 실세와 학연을 매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다른 정치인들의 혐의는 덮어둔 채 정 대표를 찍어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검사는 “위기에 처한 정 대표를 구하기 위해 전혀 사실과 다른 말을 만들어내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신상규(申相圭) 서울지검 3차장이 브리핑에서 “수사팀은 대통령이 엄정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점도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차장 검사가 정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소환 통보를 한 것과 관련해 정 대표측이 집권 여당 대표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며 불만을 표시한 것도 근거가 없다고 비판하는 분위기다. 신 3차장은 “소환 통보는 원래 수사 검사(평검사)가 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의 ‘야전 사령관’인 차장이 통보한 것 자체가 ‘예우’를 고려한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따라서 정 대표측이 예우문제를 거론한 것은 검찰에 대한 정치권의 잘못된 시각을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수사팀이 정 대표의 뇌물수수 혐의를 구체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이처럼 정치권과 정 대표측에 단호히 맞서고 있다고 보고 있다.

수사팀은 정 대표에게 대가성 있는 돈을 전달했다는 굿모닝시티 대표 윤창열(尹彰烈·구속)씨의 진술뿐만 아니라 정 대표와 관련이 있는 윤씨 주변 인물 여러명에게서 이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반환금 차액 1억은 또 어디서?▼

민주당은 14일 정대철(鄭大哲) 대표가 굿모닝시티 대표 윤창열(尹彰烈)씨로부터 받은 4억2000만원을 굿모닝시티 분양 피해자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환금의 조달경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은 이날 “정 대표를 통해 당에 전달된 후원금 2억원을 피해자들에게 전달하라”며 이낙연(李洛淵) 대표비서실장에게 맡겼다.

이 실장은 “법률가들의 조언을 받은 결과 돈을 전달받을 상대가 명확지 않아 일시 보관한 뒤 대표성을 갖는 피해자 단체가 나오는 대로 그쪽에 전달키로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실장이 반환을 위임받은 2억원은 정 대표가 지난해 12월 윤씨로부터 대선자금조로 받아 특별당비로 이 총장에게 전달한 돈. 당시 서울시지부 명의로 1억원, 정 대표 후원회 명의로 5000만원, 영수증이 발급되지 않은 5000만원으로 각각 처리됐다.

그러나 당 차원의 공식 후원금으로 입금된 돈이 1억원에 불과한 데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의혹 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다는 이유만으로 공당(公黨)의 자금에서 2억원을 내주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당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선관위 국고보조금과 일반 후원금, 당비 등이 섞여 있는 당의 자금을 구체적인 책임소재도 따져보지 않은 채 특정 사건 피해자들에게 무마용으로 지급한다면 법적 논란도 문제지만 앞으로 비슷한 경우가 발생할 경우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 실장은 “정 대표가 개인적으로 받은 후원금 2억2000만원도 조만간 피해자들에게 돌려줄 것”이라며 “정 대표가 장충동 한옥을 팔고 남산아파트에 전세를 들면서 남은 돈과 가족 및 친지들이 도와주는 돈으로 충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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