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씨,노사모 게시판에 "기자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 입력 2003년 7월 14일 15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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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경기도 용인땅 매매의혹 사건의 당사자로,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李基明)씨가 지난 13일 노사모 홈페이지에 '기자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이씨는 '들풀'이라는 아이디로 올린 이 글에서 "내 땅을 내가 팔아 빚을 갚은 것이며, 이는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재산권의 행사인데 기자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의혹을 부풀려 지금도 울화가 치민다"고 당시의 언론보도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이른바 언론고시라는 그 어려운 시험에 네가 합격되던 날, 운전 중에 너의 합격소식을 방송으로 들은 애비는 너무나 좋고 가슴이 벅차 운전을 할 수가 없어 길가에 차를 세운 채 한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고 회상하고 그러나 "요즘 애비의 솔직한 심정은 내 자식이 기자라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너무나 많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자식에게 애비의 생각을 솔직하게 전하고 싶은 심정"에서 이글을 썼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대한 애정과 일부 언론에 대한 불만과 우려를 장문의 글로 써 내려간 이씨는 마지막에 "언론은 언론으로서 당당하게 비판을 해야 한다. 반면에 아무나 물어뜯는 개라면 이 역시 백해무익하지 않겠느냐"라며 "정치인이나 기자가 존경순위 제1위로 오른다면 세상을 위해서 얼마나 좋은 일이겠느냐"고 글을 맺었다.

이씨의 아들은 서울 모 방송국의 기자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편지 전문▼

사랑하는 아들아.

이런 식의 편지를 보내는 애비를 이해해 주기 바란다.

네가 쓰는 한 줄의 기사가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평생을 피 맺힌 한에 울게 하고 하늘 아래 용서받지 못할 죄진 자에게는 면죄부를 주어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면 기자라는 신성한 직업과 작별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거의 한 달 가까이 처참한 심정으로 세월을 보낸 애비를 보며 너 역시 힘든 나날을 보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기자들을 보기가 싫고 두렵고 사람 기피증에 걸린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마음고생을 했다고 네게 화풀이를 하려는 게 아니고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자식에게 애비의 생각을 솔직하게 전하고 싶은 심정에서라는 것을 이해해 다오.

이 글을 읽고 무척 화를 내는 기자들이 있겠지만 애비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기사를 쓰는 자유가 기자에게 있듯이 애비 역시 글 쓸 자유는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서로의 양심은 걸고 생각해 볼 일이라고 믿는다.

아들아.

10년 전이던가. 이른바 언론고시라는 그 어려운 시험에 네가 합격되던 날. 운전 중에 너의 합격소식을 방송으로 들은 애비는 너무나 좋고 가슴이 벅차서 운전을 할 수가 없어 길가에 차를 세운 채 한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때 가슴속 진정한 기도는 네가 정말 좋은 기자가 되어 주는 것이었다.

그 날 저녁. 애비가 한 말은 비장했다. 너도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좋은 기자가 될 자신이 없으면 아예 처음부터 그만 두라고 했고 너는 결코 손가락질 당하는 추악한 기자는 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부당한 기사를 쓰도록 요구 당할 때 어쩌겠느냐는 물으니 그만두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이 변함없는지, 아니면 그 때 그냥 한번 해 본 소린지는 잘 모르겠다만 요즘 애비의 솔직한 심정은 내 자식이 기자라는 것을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아들아.

그 동안 노무현이라는 정치인과 뜻을 함께 하면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일부 언론으로부터 상식을 벗어난 공격을 받을 때 상한 속이야 어떻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냐만 이번에 직접 내가 그 꼴을 당하고 보니 언론의 악의적 보도가 개인을 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언론과 언론인 자신들에게도 부끄러운 자책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자해행위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식이란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가치판단 기준이라고 생각해 왔다. 상식대로만 행동한다면 법까지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애비의 생각이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세상에 상식밖에 일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언론이 보도한 애비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 땅을 내가 팔아 빚을 갚은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재산권의 행사다. 내가 연대보증을 한 탓으로 소중한 재산이 사라질 위기를 맞아 내가 취한 행동은 지극히 타당한 상식적인 행위였다.

어떻게 그 많은 남의 빚을 갚아주느냐고 하는 모양이지만 우선은 내가 연대 보증인으로서 법적 책임을 면할 수가 없고 또 한 가지는 세상에 재산보다 더 소중한 것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아들아.

스스로 잘 난 사람들이라고 자부하는 기자들이 10분만 생각하면 쉽게 판단할 수 있었던 진실을 외면하고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 부풀리기에만 매달렸는지 지금도 울화가 치민다.

남이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애비도 방송에서 수십 년간 밥을 먹고 살았고 반듯하다는 원로 언론인들과도 교분이 깊은데 그들이나 내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른바 대 신문의 1면 머리기사로 내가 올라가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으니 어찌 답답한 일이 아니겠니.

더구나 애비의 이름이 신문의 사설로까지 등장할 때 언론에 종사했던 친구들은 애비가 유명인사가 됐다고 웃었지만 애비는 그 말 속에 숨어 있는 원로 언론인으로서 그들이 느끼는 참담한 자괴감을 읽을 수가 있었다.

애비가 민언련에서 언론민주화 운동을 했기 때문에 편향된 시각을 가졌다는 비난이 있을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번 일로 해서 애비는 우리 언론이 정말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대통령의 후원회장이였던 애비가 천하의 투기꾼이고 비리의 원흉인 것처럼 신문에 보도된 후면 휴대전화의 음성녹음이 몇 개씩 들어 와 있었다.

‘회장님.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건강이나 조심 하세요’

‘저의 신문이 선생님 속을 너무 상하게 해 드리고 있습니다. 용서 하세요’

‘선생님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대통령을 흠집 내려는 의도적인 보도입니다.’

누구라고 밝히지 못하는 이유는 네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거대 언론사의 조직원으로서 도리가 없는 그들의 입장을 알지만 이해하는 것과 그들의 행위를 옳다고 인정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 아니겠니.

아들아.

애비와 절친한 현직 원로 언론인이 애비를 위로하면서 한 말은 우리 언론의 모습을 정확히 짚어 낸 것 같아 씁쓸하기 이를 데가 없다.

“우리 언론은 하루 냄비가 있고 1주일 냄비가 있고 열흘 냄비가 있다네. 아마 자네의 경우를 보니 보름 냄비 쯤 될까. 그러니 보름 동안은 일체 기자들을 상대하지 말게나. 그게 자네 이름을 언론에서 사라지게 하는 방법이네”

확실히 애비의 이름은 이제 언론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죽을 때 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노대통령의 말대로 애비는 대통령을 사랑한 죄가 있다지만 집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림만 하던 네 어머니는 무슨 죄란 말이냐.

원래 심장도 시원치 않은데다 한 밤중에 초인종을 눌러대는 기자들과 집 앞에서 날 밤을 새우는 카메라 기자들의 등살에 놀라서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지금도 전화 소리 초인종 소리만 나면 깜짝깜짝 놀라는 증세는 무엇으로 고친단 말이냐.

원래 내 성격이 그렇기도 하지만 네 어머니한테는 한마디 의논도 없이 빚보증을 섰고 돈을 갚았고 날벼락처럼 투기꾼으로 매도가 되고 신문과 텔레비에 얼굴이 나오고 동네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볼 때 네 어머니가 애비한테 뭐라고 한 줄 아니.

아무리 나라가 잘되는 일이라는 믿음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40년을 한 이불 덥고 잔 마누라한테는 얘길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엄마가 울면서 애비의 가슴을 칠 때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엄마만 끌어안고 함께 울었단다.

아들아.

지은 죄도 없이 엄마를 차에 태우고 누이 집으로 너의 집으로 막내 집으로 전전 하면서 며느리 눈치 보랴 사위 눈치 보랴 애비 나이 내일 모래면 70인데 이게 무슨 봉변이란 말이냐.

밤을 새면서 지키는 조선일보의 기자가 너무 무섭고 징그러워 엄마가 너한테 구조를 청하고 네가 자정이 다 되어서 집에 와 그 기자를 만났을 때 너와 잘 아는 사이라서 돌아가라고 했더니 데스크 명령이라서 못 간다고 했다는 얘길 듣고 기자노릇 정말 못해 먹을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내 자식만은 저렇게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아들아.

솔직한 네 생각을 한번 들어 보자.

네 생각엔 정말 애비가 부정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느냐.

애비한테 평소에도 심한 소리를 잘 하는 너니까 솔직하게 묻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수백 년 동안 물려받은 땅으로 애비가 벼락부자가 되려고 했다고 믿느냐.

노무현대통령과 함께 한 15년 세월이 애비의 입신출세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느냐.

애비가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15년 세월을 재물과 바꿀 사람이라고 믿느냐.

그래도 제일 먼저 이 나라를 사랑했고 노대통령을 사랑했고 그 다음에 내 가족과 그리고 이 세상에서 소중한 모든 것들을 사랑한 애비의 인생 68년이 가증스러운 위선으로 꾸며져 있었다고 너는 믿느냐.

공정한 시각이 처절하게 요구되는 기자인 너에게 애비가 다시 묻는다.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무장한 기자에게 진심으로 묻는 것이다.

아들아

사람을 평가할 때 애비는 그 인간이 걸어 온 길을 살핀다.

걸어 온 길을 보면 그 사람이 갈 길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애비는 그 사람과 함께 그의 곁에 누가 있는지를 살핀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듯이 대개 경우 반듯한 사람들은 그들 끼리 놀고 못된 인간들은 그들끼리 깊은 공감대를 이루고 살아간다.

15년 전. 애비가 정치인 노무현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조금도 다름이 없단다.

물론 노무현이란 정치인에게도 많은 결점이 있다. 무오류는 신의 몫이고 인간은 미완의 동물이 이다. 그래서 인간이다.

다만 그 결점을 어떻게 고쳐나가며 얼마나 창조적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됨됨이가 평가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정치인이 야망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야망이 없다는 정치인은 거짓말쟁입니다.

다만 야망은 갖되 그것이 대의와 명분에 어긋난다면 야망을 버려야 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인의 갈 길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오래 전에 애비한테 한 말이다.

애비는 그 말을 믿었고 지금도 믿음에 변함이 없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돼지저금통에 푼돈을 모았던 국민들의 뜨거운 정성과 노사모 회원들. 그리고 이름모를 수많은 민초들의 성원도 노무현대통령의 그 말을 믿었기 때문이라 믿으며 노무현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어떤 근거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국민들 중에는 노무현이 불안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몇몇 언론들의 입을 빌리면 국민들의 대다수가 노무현대통령을 불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느냐. 그럼 불안의 근거가 무엇이냐.

애비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대다수 국민들이 불안할 이유를 찾아 낼 수가 없었다.

애비 눈에 콩깍지가 씨여서 그렇다고 하겠지. 그렇다면 한번 물어보자.

국민들이 왜 불안하냐고 물어보자.

노무현대통령이 북한을 공격해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든다고 했느냐.

미군더러 한국에서 나가라고 했느냐.

재벌 해체하고 재산 내놓으라고 했느냐. 언론탄압 했느냐.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반독재투쟁하면서 분신자살 하느냐.

독재를 하면서 국민들의 입과 귀를 막았느냐.

검찰 국세청 국정원 경찰의 힘을 빌려 정치를 했느냐.

언론은 대통령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 놓고 비판하고 있지 않으냐.

대통령이 쥐죽은 듯 가만히 있지 않고 오보에 대한 정정 보도를 요구해서 불안하다는 것이냐.

기자실이 없어지고 브리핑 룸이 생겨서 불안하다는 것이냐. 옛날처럼 아무 사무실이나 쑥쑥 들어가 취재할 수 없어서 불안하다는 것이냐.

대통령이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고 농민의 자식이라서 불안하다는 것이냐.

힘없는 사람 편에 섰던 인권변호사 출신이라서 불안하다는 것이냐.

아무리 생각을 해도 대다수의 국민이 불안할 이유가 없다고 애비는 생각한다.

세상사 평가 할 때 그 속에 너무 파묻히면 평가가 제대로 안된다. 산도 멀리 떨어져서 봐야 제대로 볼 수가 있는 게 아니냐. 현실에 대한 평가도 마음의 눈으로 거리를 둬야만 제대로 보인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행로가 어제 오늘 갑자기 시작된 것도 아니고 솔직히 그처럼 일관되게 한 길을 걸어 온 정치인이 몇 명이나 되느냐. 그의 일관된 정치역정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면 소신과 대의명분은 이 땅의 정치에서는 불안의 요인 밖에 안 된다는 말이냐.

정치인의 지조 없음을 그렇게 질타하는 언론이 노무현을 불안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들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진정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한 근거도 없이 취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대통령을 불안한 인물로 부각시켜 이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기자인 네가 애비한테 설명 좀 해 줄 수 있겠느냐.

대통령이 된지 이제 겨우 5개월.

한양을 가는데 집신 날도 안 꽜고 밥 먹고 아직 숭늉도 안 마셨는데 뭐가 그리도 급하고 불안한지 이해가 안 되고 그냥 내가 짐작하는 것은 노무현대통령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그 사람들만이 불안한 것이다. 자기들 끼리 그냥 불안한 것이다.

언론이 해도 너무 한다고 애비는 생각한다.

‘미디어 비평’에서 조사한 것을 보면 300명의 기자 중 일부 언론이 노무현대통령에 대해 흠집 내기 기사를 쓴다고 대답한 사람이 69.7%였다고 한다.

이게 너는 잘못된 조사라고 생각하느냐. 69.7%의 기자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믿느냐.

아들아.

옛 조상들의 말씀에는 나름대로 오랜 체험을 통해 얻은 지혜가 함축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 말씀 중에 이런 것도 있자.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가 달걀처럼 생겨도 흉이다’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 한마디 하면 어디에 흠이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찾는다.

술좌석에서 농담 한 마디 한 것이 진담으로 둔갑되어 보도되고 분명히 부산시장 ‘안상영’이라고 말 했는데 신문에는 ‘에이 썅’이란 욕설로 바뀐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지만 바로 대선 투표 날 아침 ‘정몽준이 노무현을 버렸다’는 조선일보 사설은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올 지경이다.

유권자에게 노무현을 찍지 말라는 선동이라고 애비는 생각하는 데 네 생각은 어떤지 알고 싶구나. 이게 도대체 양식 있는 신문이 할 짓이며 분별 있는 언론인이 쓸 글이냐.

그 사설은 우리 언론사에 찬연히 빛나는 명(?)사설로 영원히 기록되리라고 믿는다.

아들아.

언론에 보도되는 기사 하나가 사람을 죽게도 살게도 하고 특히 정치인에게는 생사를 좌우하는 엄청난 위력으로 작용해서 정치인들이 기자들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가 되고 영향력이 있다고 하는 언론사 기자들한테 정치인들이 얼마나 비굴하게 아양을 떠는지 애비는 많이 보았다.

애비도 지난 대선 기간 중에 대통령후보의 언론문화 특보로서 언론인을 자주 만났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며 심지여는 스스로를 앵벌이라고도 자조했던 기억과 함께 부끄러움에 잔등에서 땀이 솟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더구나 일부 언론으로부터 참혹할 정도로 학대(?)를 받는 노무현후보의 고위 운동원들과 민주당의 지체 높은 당직자들이 아침에 술이 덜 깬 벌건 얼굴로 이른바 영향력이 있다는 언론의 기자들과 어제 밤 술 한잔 한 얘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고 어쩌다 골프라도 치고 난 다음 날이면 큰 벼슬이나 한 듯이 하루 종일 그 얘기를 입에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저런 인간들이 좋은 기자들을 다 망치는구나 하고 한숨을 쉬었다.

골프도 좋은 운동이고 취재를 해야 하는 기자들의 입장에선 취재원을 접촉하는 필수적 취재도구일 수도 있는데 혹시나 골프가 기자들의 올곧은 마음을 공 따라 하늘로 날려 보내고 염불보다 잿밥에 더 생각을 두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특히 언론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추악한 속셈이 골프를 통해 만에 하나라도 이루어진다면 이는 기자들의 생각과는 상관이 없이 오물을 뒤집어쓰는 결과로 나타 날 것이다.

아들아.

청와대와 기자들 사이에 갈등이 깊다고 한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라면 한 점 더 놔 줬다고 들었다.

청와대 출입을 원하는 기자들도 참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청와대 출입을 사양하는 기자들 까지 생겼다니 청와대의 위상이 분명히 달라진 것인데 기자들은 지금 청와대가 무척 불편하다고 한다.

왜일까. 간단한 이유다. 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관행이 바뀌면 당연히 불편하기 마련이다. 신발을 바꿔 신어도 불편한데 제도가 바뀌었으니 얼마나 불편하랴. 더구나 자존심 강한 기자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취재를 못하게 됐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랴.

게다가 기자들을 대하는 사람들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서투를 수밖에 없으니 옆에서 보고 화가 치미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기자들도 바뀐 제도에 적응하도록 나름대로 애를 써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노력을 한다면 머리 좋은 사람들이 왜 문제를 풀어 내지 못하겠니. 지금까지 익숙했던 기자들 세계의 새로운 변화는 기자던 취재원이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의 요구라고 생각한다.

7월2일자 기자협회보를 보니 동아일보 중견기자들이 떠난다고 안타까워했다.

왜 기자들이 떠날까. 우는 아이도 속이 있어서 운다고 했는데 하물며 잘난 기자들이 떠나는 이유가 왜 없겠느냐.

그러나 기자라는 직업에 보람을 느끼지 못해서라면 이 나라 언론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가슴 아픈 일이 분명할 것이다.

아들아.

언론은 언론으로서 당당하게 비판을 해야 한다. 그게 의무다. 언론이 감시견이라 한다면 악을 보고 짖지 못하는 개가 무슨 쓸 모가 있느냐. 반면에 아무나 물어뜯는 개라면 이 역시 백해무익하지 않겠느냐.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옳은 비판은 속이 쓰려도 겸손하게 받아 드리고 바른 정치를 위해 몸을 던져야 한다. 입으로만이 아닌 마음으로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니.기자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존경순위 최하위 층에서 벗어나고 자식들 보기에도 떳떳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치인이나 기자가 존경순위 제1위로 오른다면 세상을 위해서 얼마나 좋은 일이겠느냐.

이런 글 써서 마음이 무겁구나. 마음고생 없기 바란다.

언제 만나서 밤새워 긴 얘기 한번 하자꾸나.

2003년 7월12일. 아침

애비가...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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