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폐연료봉 재처리완료 통보]美 언제까지 北核 '인내'할까

  • 입력 2003년 7월 13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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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폐연료봉 8000개의 재처리 작업을 완료했으며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미국에 통보함으로써 북한 핵 위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핵개발 계획을 시인한 뒤 단계적으로 미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여 왔고 재처리가 완료 단계에 와 있다고도 여러 차례 밝혀온 만큼 이번 통보는 예상된 수순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동안 재처리 작업을 암묵적인 한계선(red line)으로 인식하면서도 재처리 사실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던 미국은 최근 재처리 사실을 입증하는 크립톤85가 검출됐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된 셈이다.

북한이 미국에 통보했다는 영변의 50MW 원자로와 태천의 200MW 원자로의 건설 재개도 미국이 예상했던 북한의 다음 수순에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당장 새로운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실 미국은 북한과의 다자대화를 추진하는 한편 새로운 상황 전개를 예상하고 대비해 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의 대북 비난 성명 채택 추진 △북한의 마약, 위조 달러, 미사일 수출 등을 중심으로 한 대북 경제 제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이 미국이 추진해온 다양한 대응책에 해당한다.

그러나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 완료 통보로 북한과의 대화 무용론을 주장해온 미 행정부 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은 분명하다.

이와 함께 강경파들이 주도해온 다양한 대북 압박 카드들의 필요성에도 무게가 실릴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른 미국의 관련국들에 대한 외교 공세도 강화될 전망이다.

경제 제재나 해상 봉쇄 같은 강압적인 수단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도 다자회담 등 외교적 노력을 모두 소진한다는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성사 가능성이 크지 않은 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도 계속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미국의 ‘인내’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앞으로 북핵 긴장의 수위에 따라 결정될 것임은 물론이다. 북한이 미국에 통보한 내용들이 사실로 실제로 확인되거나 북한이 핵물질 수출이나 핵 실험을 강행할 경우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 정부는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 여부에 대해 “노 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아직 공식 발표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미리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은 정부 내에도 확산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재처리에 관한 어떤 언급도 좋은 사태 진전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현 상황이 특별히 악화됐다고 보지는 않으며,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의 핵재처리 완료 여부에 대해 “북한이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볼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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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北 핵개발 어디까지 왔나▼

북한이 실제로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해도 당장 핵보유국이 되는 건 아니다. 핵보유국이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하는지, 북한은 어떤 단계에 있는지 살펴본다.

▽폐연료봉 재처리란 무엇인가=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얻으려면 우라늄을 태워야 한다. 즉, 우라늄을 연료봉 형태로 만들어 원자로에서 태우면 폐연료봉이 생긴다. 이 폐연료봉을 절단하거나 화학처리하는 재처리 과정을 거치면 플루토늄이 추출되는 것이다. 이 플루토늄을 귤 조각처럼 여러 조각으로 만들어 느슨한 공(球) 형태로 두고 둘레에 고폭장약을 감싸 놓으면 핵폭탄이 된다. 플루토늄을 확보한 뒤 1∼2개월이면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

이번에 북한이 재처리했다고 통보한 8000개의 폐연료봉은 북한이 1980년대 후반부터 1994년까지 5MW급 원자로에서 우라늄을 태워 확보한 것들. 1994년 제네바 합의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밀봉해 놓았는데 지난해 말 북한이 밀봉을 뜯었다.

북한은 이미 1994년 이전에 10∼12kg의 플루토늄을 추출, 1, 2개의 핵폭탄을 만든 것으로 미국은 확신하고 있다.

한편 핵무기는 고농축 우라늄을 갖고도 만들 수 있다. 우라늄을 태우는 과정 없이 천연 우라늄에 극소량 포함돼 있는 우라늄235의 농도를 기술적으로 농축하면 된다.

▽플루토늄 추출은 핵 개발의 어떤 단계인가=핵보유국이 되려면 핵폭탄 원료(플루토늄 또는 고농축우라늄) 확보→원료를 폭탄으로 만들고 이를 터뜨릴 수 있는 장치(기폭, 고폭 장치) 확보→미사일 등 운반 수단 탑재 기술 확보→핵실험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은 순차적이긴 하지만 거의 동시 진행형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고영구(高泳耉) 국가정보원장이 9일 국회에 보고했듯이 북한은 이미 고폭장치 실험을 수십 차례 해왔다. 그리고 미국은 북한이 핵탄두의 소형화 경량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핵폭탄 연료 확보 단계에 이미 진입했으며, 터뜨리는 장치와 운반수단 탑재 능력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으나 한창 연구 중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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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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