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경근/'200억 모금' 수사해야 옳다

  • 입력 2003년 7월 13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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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에서 검찰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정치권에 대해 지니고 있는 용기(勇氣)를 담은 그릇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측량할 수 있는 첫 번째 시금석이 던져졌다.

11일 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지난 대선 때 유권자들의 돼지저금통이 아닌 기업체 등에서 받은 대선자금 규모는 200억원가량”이라고 밝힌 대선자금 관련 발언이 그것이다. 돼지저금통을 통해 모금한 70여억원에다 기업체의 기부금이 200억원 안팎이고, 여기에 국고보조금 123억원을 합쳐 선거자금 액수만 해도 400억원에 이른다면, 이는 민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283억원을 훨씬 상회하는 큰 액수이기 때문이다.

▼與대표가 공적인 언급했는데…▼

비록 정 대표가 그 액수 등에 대해 곧바로 번복하긴 했으나, 중요한 것은 정 대표의 ‘200억원 발언’이 룸살롱 주연(酒宴) 속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집권당 대표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행한 공적인 언급이라는 점이다. 즉, 대형 복합쇼핑몰 ‘굿모닝시티’ 비리 의혹 사건을 둘러싸고 정 대표가 “4억2000만원을 받았고 영수증 처리가 안 된 것도 있다”면서 “대선 때 당에 넘겨준 것이 10억원쯤 된다”고 대선자금에 대해 입을 여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뤄진 발언이었던 것이다. 그 점에서 이는 공적인 검증, 즉 검찰의 조사를 거쳐야 할 필요성이 크다.

지난해 민주당의 대선자금 액수와 그 모금 과정에 대한 조사가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굿모닝시티’ 비자금 의혹 및 정관계 로비, 그리고 정치인들에 대한 금품 전달 등에 관련된 실체의 파악이 그것이다. ‘굿모닝시티’ 수백억원 횡령 및 로비 의혹 사건은 이미 지난해 9월 말 주택공사를 상대로 한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거론됐고, 지난달 중순경 검찰이 조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검찰은 이미 수사 중인 복합쇼핑몰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수사뿐 아니라,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로비 의혹의 수사를 통해 대선자금의 조성 및 처리 과정, 돈을 낸 사람과 액수 등을 밝혀내야 한다. 또 현행 정치자금법 및 공직선거법과 관련해 이권 청탁이 개입되었다면 그 대가성 여부와 관련된 형법이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의 적용 여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수사에 곧 착수해야 한다.

비록 당시에는 몰랐더라도 정 대표가 받은 대선 자금에는 사기당한 ‘굿모닝시티’ 분양 피해자 3000여명의 눈물겹고 사연 많은 돈들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그 로비 의혹의 실체 파악과 처리과정을 온 국민이 주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200억원 발언’은 비단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시금석일 뿐만 아니라, 선거를 통해 들어선 노무현 정부의 국민적 정당성 내지 그 힘의 원천인 도덕성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주류 비주류가 ‘굿모닝 충격’으로 결속됐다든지, 의원총회에서 정치검찰과의 일전불사를 운운했다는 보도를 접하면 가슴이 답답해질 뿐이다. ‘굿모닝시티’ 피해 계약자들이 “그 피해액은 장물이니 돌려 달라”고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도 민심을 읽지 못하고 사태를 바로 보는 혜안이 없는 것인지 한탄이 절로 나온다. 차제에 정치자금 총량의 대폭 제한 및 그 투명성 향상을 위한 정치개혁이 이뤄져야 함을 절감케 하는 대목이다.

▼검찰-盧정부 도덕성 시험대 ▼

이미 ‘정도(正道)와 원칙에 따른 성역 없는 수사’를 공언한 바 있는 검찰은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정치권 인사의 로비 연루, 수사기관의 비호 의혹 등 ‘게이트’의 구색을 갖춘 이 사건 수사에서 검찰은 정의의 저울추를 항상 정중앙에 위치하도록 해 이 ‘게이트의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 그럴 때 올해 초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보였던 평검사들의 행태는 검찰이 지닌 ‘올곧음’의 세련되지 못한 표현이었을 뿐임을 국민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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