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핵 ‘금지선’ 넘었다

  • 입력 2003년 7월 13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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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보관 중이던 폐연료봉 8000개의 재처리 완료 사실을 미국에 통보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핵발전소에서 나온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목적은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것이다. 북한의 통보는 “이래도 우리의 핵무장 의도를 믿지 못하겠느냐”는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은 재처리 완료를 알리면서 ‘핵 억제력’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핵 강국인 미국에 맞서 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한두 개로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북한이 50t이나 되는 폐연료봉에서 나온 28∼35kg의 순도 높은 플루토늄을 이용해 4∼6개의 핵폭탄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게 아닌가.

이제 북핵은 ‘금지선’을 넘었다고 판단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북한의 핵 보유를 반신반의할 때가 아니라 다수의 핵무기를 보유하는 상황을 우려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우선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북한에 대해 미국 등 관련국들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당장 북핵 문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 대화를 주장하는 비둘기파보다 북핵시설에 대한 제한적 공격까지 거론하며 강경대응을 촉구하는 매파들이 힘을 얻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정부의 초기대응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외교통상부는 “정보관련 사항은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며 폐연료봉 재처리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정부는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적절한 대화’의 방법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애매한 결론을 내려 현재의 위기상황을 반영하는 데도 실패했다.

우리는 본란에서 어떠한 경우라도 한반도의 평화가 유지되어야 하고 전쟁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현명한 대응을 해야 한다. 핵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북한의 전략에 면역이 생겨 그런지는 모르지만 위기를 외면하고 사태를 축소하려 들면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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