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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흐르는 한자]<594>萬 里 長 城(만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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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흐르는 한자]<594>萬 里 長 城(만리장성)

입력 2003-07-13 17:35수정 2009-10-1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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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 里 長 城(만리장성)

築-쌓을 축 關-빗장 관 眈-노릴 탐

役-부릴 역 曾-일찍이 증 牆-담 장 ‘시안(西安)을 보지 않고는 中國文化의 위대함을 알 수 없고 長城(장성)에 오르지 않고는 中國建築(건축)의 위대함을 알 수 없다.’

중국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서양 사람도 한 마디 거들었다.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류의 건축물은 萬里長城(만리장성)뿐이다.’

동쪽 뽀하이(渤海·발해)灣(만)에 위치한 ‘天下第一關‘(천하제일관) 산하이(山海)關에서 출발하여 뻬이징(北京)을 지나 황허(黃河)를 건너 서쪽으로 쓰루(絲路·실크로드)와 나란히 달리다가 멀리 깐쑤(甘肅)省(성)의 쟈위(嘉욕)關에 이르기까지 대륙의 북방을 동에서 서로 장장 600km나 뻗어 있다. 말이 ‘만리’長城이지 실은 ‘만 오 천리’長城이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은 그냥 ‘長城’이라고 부른다.

萬里長城의 건설은 멀리 2400년 전 戰國時代(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燕(연), 趙(조), 秦(진)이 虎視眈眈(호시탐탐) 南進(남진)을 꾀하던 북방의 흉노족을 막기 위해 城을 쌓았고 후에 秦始皇(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면서 이들을 연결, 증축함으로서 현재 萬里長城의 기초를 쌓았다. 그러나 흙과 나무 등으로 쌓았던 탓에 비바람에 훼손되어 역대로 長城의 補修(보수)는 큰 두통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참다못한 明太祖(태조) 朱元璋(주원장)이 벽돌로 修築(수축)하였고 그 후 200년에 걸쳐 현재의 長城이 완성되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萬里長城은 明(명)나라 때의 것으로 秦始皇의 작품이 결코 아님을 알아두자.

확실히 萬里長城의 건설은 세계사상 未曾有(미증유)의 大役事(대역사)임엔 틀림없지만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 보면 끔찍한 史實(사실)을 보게 된다. 불행히도 그것은 피로 얼룩진 ‘부끄러운’ 大役事일 뿐이다. 宋의 名宰相(명재상) 王安石(왕안석)은 이렇게 말했다.

‘秦나라 사람의 절반은 萬里長城 때문에 죽었다.’

과연 隋煬帝(수양제)는 修築을 위해 100만 명을 동원했는데 열흘 동안 60만 명이나 죽었다. 무고한 백성이 ‘國防‘(국방)이라는 미명 하에 죽어갔던 것이다. 城을 쌓다 죽은 시신으로 人山人海(인산인해)를 이루었다. 萬里長城은 肉身(육신)의 城에 다름 아니다. 이 때문에 明나라 때에는 ‘長城‘이라는 이름 대신 ‘邊牆‘(변장·국경의 담)이라고 불러야 했다. 萬里長城은 역사의 그늘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萬里長城을 오른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것을 깨닫고 올까?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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