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 신비]식물인간…'절반의 생존'

  • 입력 2003년 7월 13일 1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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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전해 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몇 년 전 유행했던 소방차의 노래는 힘차면서도 달콤하다.

그러나 페르도 알모도바르 감독의 아름다운 영화 ‘그녀에게’에서 헌신적인 남성은 여자에게 다정한 말을 매일 같이 들려주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교통사고로 대뇌가 모두 손상되어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여인이 그 말을 이해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뇌의 맨 밑바닥 작은 부위인 뇌간은 숨 쉬고 심장을 뛰게 하는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뇌간을 제외한 나머지 뇌 부분을 대뇌라고 하는데 대뇌는 말하기, 듣기, 사고, 판단 등 모든 인간의 고등행위를 통제한다. 교통사고, 일산화탄소 중독, 뇌중풍 같은 질병으로 뇌간을 제외한 대뇌의 기능이 모두 사라진 상태를 우리는 식물인간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에도 뇌간은 살아 있으므로 숨쉬고 맥박이 뛰는 것은 정상이다. 이들은 눈을 깜빡이고, 잠을 자고 깨기도 한다.

자극을 주면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며 기본적인 신체의 움직임도 가능하다. 하지만 결코 남을 알아보거나 대화를 할 수 없기에 가족들을 슬프게 한다. 특별한 합병증이 생기지 않는 이상 이러한 식물인간 상태는 영원히 계속된다.

식물인간과 반대되는 경우가 ‘잠금증후군’이다. 뇌중풍 같은 병으로 뇌간이 심각하게 손상되면 숨쉬는 데 문제가 생겨 숨지기 쉬우며 살아난다 해도 사지에 심한 마비가 생겨 꼼짝 못하고 누워 지내게 된다. 이 경우 얼굴과 목구멍 근육도 마비되므로 말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한다.

그러나 식물인간 상태와는 달리 이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전해 줄 수 있다. 시체처럼 누워 지내야 하고, 음식도 튜브를 통해 공급해야 하지만, 대뇌는 분명 또렷이 살아 있기에 그들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잠금증후군 환자 역시 보호자의 지속적인, 세심한 간호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의술이 발전하면서 심각하게 뇌가 손상된 환자의 생명을 살릴 기회는 많아졌지만, 역설적으로 식물인간이나 잠금증후군 환자는 늘어나고 있다. 이런 환자를 바라보면 이들 불행한 환자와 가족에게 현대의학이 해 준 것이 무엇인지 회의가 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는 잠금증후군 환자 장 마르탱의 눈 움직임을 컴퓨터와 연결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외부와 교신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아직은 소설 속의 상상이지만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김종성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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