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2>민영화된 공기업의 시험

  • 입력 2003년 7월 13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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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4일 열린 포스코 정기 주총에선 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감사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등 지배구조를 더욱 개선하는 안건이 통과됐다. 사진제공 포스코
3월14일 열린 포스코 정기 주총에선 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감사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등 지배구조를 더욱 개선하는 안건이 통과됐다. 사진제공 포스코
《국내에서 포스코만큼 선진적인 기업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2000년 10월 민영화된 이후 짧은 기간에 포스코만큼 지배구조에서의 한계와 과제를 절감한 기업도 드물다.

포스코는 한동안 민영화 기업의 모범사례로 거론되며 지난해 KT 민영화의 본보기로 채택됐다.

하지만 지난해 말 유상부(劉常夫) 전 회장의 ‘황제 경영’ 논란으로 지배구조 문제에 흠집을 입었다.

논란이 계속되면서 올 초 회장 선출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하는 부작용을 낳았고 결국 유 전 회장은 자진 사퇴했다.

신임 이구택(李龜澤)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다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이사회의 독립성=포스코는 99년 3월 정부 민영화 계획에 대비한 경영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맥킨지의 컨설팅을 받아 ‘글로벌 전문경영체제(GPM)’를 도입했다.

15명의 이사회 멤버 가운데 8명이 사외이사다. 이사후보 추천 및 평가위원회, 재정 및 운영위원회, 감사위원회 등 이사회 산하 전문위원회는 사외이사가 절반 이상 참여한다.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이사와 집행임원 임기도 2년으로 단축했다.

99년 이후 사외이사의 요구로 전문위원회의 안건이 수정되거나 부결되는 비율도 8∼12%에 달했다. 2001년 이사회에 상정된 ‘경영성과 평가제도’는 사외이사들의 요구에 따라 성과와 보상의 상관관계를 높이는 방향으로 더욱 강화됐다.

지난해 4월 모 대학에 디지털 도서관 건립비를 출연하려던 안은 부결됐다. 이사회가 단순히 ‘거수기’ 노릇을 하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8월 세계적 금융전문지인 ‘유로머니’가 신흥시장 650개 기업을 대상으로 평가한 기업지배구조 평가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사회의 독립성’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제도만으론 안 된다=이처럼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갖춘 포스코에 대해 논란이 그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다.

경영자는 주주의 위임을 받아 회사를 움직이는 대리인으로서 주주의 이익, 회사의 이익에 충실하게 경영판단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본인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잦다.

대리인 문제란 이 같은 이해(利害) 충돌을 가리키는 것. 미국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최고경영자(CEO)의 전횡’이다. 특히 포스코처럼 주식 분산이 잘 된 기업일수록 이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총수의 전횡’으로 대표되는 재벌형태 기업군의 문제와 대조적인 모습.

실제로 포스코는 유 전 회장 시절 △포항공대와 포철교육재단에 수천억원의 회사 자금을 기부한 후 자사주를 사도록 했고 △이러한 기부 행위를 의결할 당시 이사회 보고 자료나 의사록에 기부금 용도를 제대로 명시하지 않았으며 △SK텔레콤 등 우호 기업과의 상호지분 보유로 수천억원의 평가손을 감수했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투자판단에 회장 연임을 위한 포석이 고려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포스코가 높은 배당을 한 것도 외국인 주주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경영권을 지키려는 의도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포스코가 더 이상 공기업이 아닌데도 정부가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인 것. 올 초 유 전 회장이 연임하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자 정부측 기관투자가들이 연임에 반대 의견을 밝히는 등 유무언의 압력이 가해졌다.

당시 양호한 경영 실적을 이유로 유 전 회장을 지지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런 정부의 행태에 노골적인 불신의 눈초리를 보냈다. 유 전 회장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민간기업의 인사에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또 한 번의 도전=포스코는 국내 철강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기업 특성상 시장의 견제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투명한 지배구조를 통한 내부 견제 장치는 어느 기업보다 중요하다.

경영기획실 전중선(田重先) 경영정보팀장은 “외부 주주나 중립적 외부기관에 사외이사 추천을 맡기는 등 완전히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 주총에서는 회장 선출의 첫 관문인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했다. 감사위원회도 ‘3분의 2 이상’에서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정관을 변경했다.

이 같은 노력이 성과를 거두면 포스코는 기업지배구조 발전사에 또 한번의 획을 긋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포스코 내부에서는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사 판단이 신중해지는 것은 좋지만 경영자의 빠른 결단이 필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투명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포스코의 사외이사로 이사후보추천 및 평가위원장이자 감사위원인 박웅서(朴熊緖) 세종대 교수는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한 제도적 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사회의 성숙도와 사외이사들의 자질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KT 민영화 1년 ▼

KT는 최근 이사회에 프로농구단 인수에 관한 안건을 올렸다. “농구단을 기업 이미지 홍보에 활용하자”는 것이 취지.

그러나 이 안건은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사외이사들이 “농구단이 KT 이미지와 맞지 않고, 투자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반대했기 때문. 실무 부서에서 보완작업을 거쳐 안건을 몇 차례 다시 올렸으나 이사회의 대답은 역시 ‘노(No)’였다. 1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실세(實勢)’ 이사회의 등장=사외이사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KT가 지난해 8월 민영화를 계기로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 탈바꿈했기 때문.

상임이사와 사외이사 비율이 6대 7에서 6 대 9로 바뀌면서 사외이사 비율이 금융기관을 제외하고 주요 대기업 중에서 가장 높아졌다. 사장추천위원회가 사장과의 경영계약을 체결한 뒤 경영성과가 부실하면 주총에 사장 해임을 건의할 수 있도록 했다. 소액주주의 권익보호를 위해 다른 대기업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집중투표제를 자발적으로 도입했다.

특히 사장 대신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으면서 이사회의 권한이 막강해졌다. 전체 안건의 10% 정도는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KT의 설명. 정식 안건으로 올라오기 전에 사외이사가 미리 “적절치 않다”며 제동을 건 것까지 포함하면 ‘거부권 행사’ 비율이 10%를 넘는다. 사내에서는 이제 “이사회를 설득시키지 않으면 안건이 통과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제는 주주가 주인=KT는 올 3월 주주총회를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했다. 주주가 어디에서건 주총을 지켜볼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 주총에서는 올해 예상 순이익의 50%인 5500억원을 주주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했다.

LG투자증권의 정승교 애널리스트는 “주주 중시에 관한 한 KT는 민영화 이후 기업설명회(IR)를 적극적으로 하는 등 우등생으로 탈바꿈했다”고 평가했다. 주주 중시 정책이 시장의 평가를 받으면서 민영화 이전 20% 미만이었던 외국인 지분이 10일 기준으로 44.24%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주주를 모시다 보니 KT에는 최근 ‘상복’이 터지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원장 정광선)는 3일 KT를 ‘2003 기업지배구조 최우수기업’으로 선정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9월 기업지배구조 리포트에서 “KT의 기업지배구조는 아시아 지역에서 베스트 기업 중의 하나”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남아 있는 문제들=이처럼 KT는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한 지금까지 순항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 그러나 복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 1월 계열사인 KTF의 신임사장 선임 문제를 놓고 내부적으로 치러야 했던 홍역이 대표적인 사례. 당시 사장 후보자들끼리의 경쟁이 과열 양상을 띠면서 과거 관성에 의한 ‘외부 줄대기’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KT 기업지배구조의 진짜 시험대는 2005년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민영화 이후 초대 사장인 이용경(李容璟)씨의 임기가 2005년에 만료되기 때문. 현 경영진의 재임 여부, 또는 새로운 경영진의 선임문제가 과연 얼마나 주주들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해 결정될지에 따라 기업지배구조의 안착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한때 지배구조 우등생이었다가 지난해 말 회장 선임과정에서 ‘왜곡’을 겪었던 포스코의 사례는 KT에 또 다른 ‘학습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민영화 전후 KT 기업지배구조 비교
민영화 이전민영화 이후
이사회 구성상임이사 6명 이내
사외이사 7명 이내
상임이사 6명 이내
사외이사 9명 이내
감사시스템감사 1명감사위원회 도입
사외이사 추천기관주주협의회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
(상임이사 1명, 사외이사 4명)
이사회 의장사장사외이사
주식소유제한동일인 지분한도(15%)동일인 지분한도 폐지
중간배당제없음근거규정 신설
집중투표제없음도입
자료:KT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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