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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바둑 320단…충암中-高출신 기사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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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바둑 320단…충암中-高출신 기사합계

입력 2003-07-11 19:19수정 2009-10-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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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응암동 충암중고교 출신 프로바둑 기사는 72명. 한국기원 소속 191명의 기사 중 37.6%나 된다. 바둑계에선 “충암 출신 기사들이 힘을 합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들의 단수 합계가 올 3월 300단을 넘었고 현재는 320단에 이른다. 충암동문기사회는 1993년 6월 100단, 1999년 2월 200단을 돌파했다. 올해부터 승단 규정이 완화된 것을 감안하면 내년 400단 돌파도 어렵지 않다. 일본 기타니(木谷) 도장 출신 기사의 단위가 500단이 넘지만 이는 도장 출신 기사의 제자까지 포함해 계산한 것으로 충암과는 의미가 다르다.

○충암의 연혁

충암학원 이홍식 이사장이 1971년 바둑부를 창설해 학생들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김수영 8단이 지도사범을 맡았고 허장회 8단이 충암 출신 1호 프로기사가 됐다.

허 8단은 “충암의 입학은 당시 하루 10여시간씩 바둑공부를 해야 하는 프로지망생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말했다.

허 8단과 조대현 유창혁 9단, 김영환 7단 등 지방출신 기사들은 아예 이 이사장 집에서 기거하며 합숙공부를 했다.

70, 80년대 드문드문 이어지던 충암 동문들은 이창호 9단의 입학 무렵 수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동문회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88년 최규병 양재호 유창혁 이창호 9단이 바둑연구를 위해 모인 ‘충암연구회’가 모태가 됐다.

당대 최고수들이 모인 이 연구회에 동문기사들이 속속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결속이 다져졌다.

이후 충암동문의 모임인 ‘충암 동문기사회’가 만들어졌고 연구회는 ‘소소회(笑笑會)’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이어졌다.

문용직 4단은 “함께 모여 연구하는 풍토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충암 출신 기사들이 바둑계에 기여한 점”이라고 말했다.

○기보집 발간과 기념식

동문회는 이번 300단 돌파를 맞아 기념기보집을 냈다. 자신의 프로기사 생활에서 가장 인상 깊은 바둑을 한판씩 골라 간단한 소감과 함께 묶은 것.

이창호 9단은 2000년 제4회 잉창치배 8강전인 요다 노리모토와의 대국을 골랐다.

이 9단은 “이 대국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한판이었다. 이제껏 요다 9단과의 전적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이 대국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양재호 9단은 1989년 제1회 동양증권배에서 장수영 9단을 누르고 우승한 기보를 소개하면서 “이후 계속 타이틀을 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이색적인 것은 10명의 기사가 조훈현 9단과의 대국을 ‘가장 기억에 남는 기보’로 뽑았다는 것. 조 9단을 이긴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렵고 개인에게 특별한 사건이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한편 동문회는 14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홀리데이인호텔에서 ‘300단 돌파’ 기념식을 갖는다.

○명단(졸업 기수순)

허장회 김학수 정수현 김동면 정대상 문용직 조대현 강만우 양재호 최규병 김성래 유창혁 김영환 공병주 김승준 이상훈(7단) 윤현석 김영삼 이상훈(3단) 이창호 윤성현 김성룡 양건 이성재 김만수 서무상 김명완 백대현 한종진 안조영 현미진 안영길 최문용 강지성 조한승 이정우 이희성 이용찬 홍장식 유경민 유재성 염정훈 이용수 김효곤 홍꽃노을 김주호 홍민표 최원용 주형욱 박지훈 박정상 최철한 원성진 박영훈 이재웅 김동희 조혜연 옥득진 이다혜 송태곤 박진솔 허영호 백홍석 김혜민 이영구 홍성지 윤준상 손근기 김수진 김은선 김세실 최동은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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