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21>고백하는 아름다움

  • 입력 2003년 7월 11일 1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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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절에는 두 명의 아이가 살고 있다. 학교를 파하고 와서는 도량을 마구 헤집고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즐거워진다. 그러다 내가 이름이라도 불러주면 내게 달려와서 허리와 다리에 달라붙어 매미 울음소리를 낸다. “맴, 맴. 나는 매미다” 하고 재롱을 부리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문득 나무를 떠올린다. 나무가 매미에게 거짓 없이 자신을 열어 맞이하듯이 나 역시 그렇게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의 일이다. 젓가락질을 하는 나를 보고 아이가 내게 물었다. “스님, 손 다쳤어요?”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그래, 손을 다쳤어.” 그 후 며칠이 지나도 나의 젓가락질이 그대로이자 아이들은 식사 때마다 물었다. 계속되는 아이들의 질문 앞에서 차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부끄럽지만 아이들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스님은 젓가락질을 잘 할 줄 모른다고. 어려서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고 마음대로 하다가 이렇게 바보같이 젓가락질을 하게 되었다고. 어렵게 한 나의 고백을 듣고 아이들은 스님도 말썽쟁이였다며 좋아했다.

우리 절집에는 ‘자자(自恣)’라는 것이 있다. 대중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고백하는 의식이다. 대중은 다만 경청할 뿐 누구도 고백한 사람을 향해 비난의 말을 던지지 않는다. 대중은 묵연함으로 고백한 이의 허물을 용서하고 고백한 사람은 대중의 말없는 용서로 인해 더욱더 깊은 참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자자’는 이렇게 고백한 사람이 참회를 통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기회를 부여하는 자비의 실천인 것이다.

고백하는 개인이 아름답듯이 고백하는 사회는 건강하다. 그러나 그 고백은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고백이 강요될 때 개인은 참회의 기회를 잃게 되고 사회는 병약해질 수 있다.

그 후 아이들과 나는 한결 가까워졌다. 서로 말썽쟁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우리들은 예전보다 더 친근한 ‘나무와 매미’가 되어 저무는 도량에 난만한 웃음소리를 날린다.

성전 스님 월간 '해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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