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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파문'으로 본 스포츠외교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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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파문'으로 본 스포츠외교 현주소

입력 2003-07-11 18:29수정 2009-09-2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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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IOC부위원장

《2010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와 이 과정에서 불거진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의 행적은 한국 스포츠 외교의 기형적 행태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한국 스포츠 외교는 지난 수십년 동안 김 부위원장 한 사람에게만 매달리다시피 해왔다. 이번 사태는 그 폐해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결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IOC통(通)을 집중 육성해 세계 10위권 스포츠 강국에 걸맞은 투명하고 다양한 스포츠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귀국 후 “김운용씨가 2010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역행하는 IOC 부위원장 출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갖고 있는 국제 스포츠계의 영향력에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말은 그동안 한국의 스포츠 외교가 김 부위원장 개인에게 얼마나 집중돼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 부위원장도 “패션쇼나 열고 거리에서 음악회를 해봤자 쓸데없이 돈만 들지 무슨 소용이 있나. 실제 표를 행사하는 IOC 위원의 마음을 움직일 사람은 나뿐”이라며 자신 외에는 대안이 없음을 자랑스럽게 밝히곤 했다.

그러나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 김 부위원장이 그동안 후계자를 키우는 데 얼마나 인색했는지를 스스로 밝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김 부위원장이 한국의 대표적 스포츠 외교통으로 성장한 과정을 역 추적해보자. 김 부위원장은 1986년 10월 비교적 젊은 나이인 55세에 한국인으로는 6번째로 IOC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는 그의 개인적 역량도 있었겠지만 박종규 전 IOC 위원의 사망에 따른 승계와 88서울올림픽 유치로 높아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 덕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IOC 위원이 된 뒤 후계자를 키우지 않은 채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국제 스포츠계에 접근할 수 없는 배타적인 왕국을 굳혀왔다.

이는 현재 IOC 내에서 공식 직책을 갖고 활동 중인 한국인이 장주호 생활체육분과위원, 김철주 올림픽기념품수집분과위원, 전이경 선수분과위원 등 3명뿐이란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나마 이들이 속해 있는 분과는 사실상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들이 분과위원이 된 것을 두고 ‘선심성 배치’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IOC를 제외한 다른 국제체육단체에도 국내 인사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박용성 IOC 위원이 국제유도연맹 회장, 박상하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집행위원장이 국제정구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게 고작이다. 세계 10위권에 드는 스포츠 강국치고는 별 볼 일이 없다.

이건희 박용성 IOC 위원도 김 부위원장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했다. 기업인인 이들은 같은 IOC 위원이기는 하지만 김 부위원장이 ‘돈줄’인 라디오·TV분과위원장을 맡는 등 풀타임으로 전념해온 것과는 달리 공식 직책은 없는 상태.

김 부위원장이 스포츠 외교에서 이처럼 배타적인 왕국을 굳혀온 데에는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전문가를 육성해 다양한 스포츠 외교를 펼 생각은 않고 있다가 급한 사안이 벌어지면 김 부위원장에게 매달리는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1인 독주가 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그 원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쪼그라든 정부의 체육정책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서울올림픽 유치와 함께 82년 체육담당 주무 부처로 출범한 체육부는 90년 체육청소년부로, 94년에는 문화체육부로 바뀌었다. 98년에는 아예 체육이란 ‘문패’조차 빠져 문화관광부 산하에 불과 46명의 직원이 꾸려가는 체육국으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국제 스포츠 업무는 뒷전으로 밀렸다. 한국의 스포츠 외교가 정상적인 외교활동보다는 로비에만 의존해 왔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스템이 아니라 한 사람이 쥐락펴락하다보니 한계가 생기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로비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번 ‘김운용 파문’은 한국 스포츠의 구조적 결함이 빚어낸 ‘재앙’인 셈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포스트 김운용' 준비하는 사람들▼

김운용 IOC 부위원장의 주장대로 그가 없다고 해서 한국의 스포츠 외교가 당장 고사상태에 빠질까. 그렇지 않다. 나름대로 ‘포스트 김운용 시대’를 준비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지난 프라하 IOC총회 프레젠테이션에서 평창은 2010동계올림픽 유치 경쟁 도시인 캐나다 밴쿠버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압도했다. 평창이 1차 투표에서 밴쿠버에 앞서는 등 예상 외로 선전한 것은 김 부위원장의 영향력이 아니라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부동표를 대거 흡수했기 때문이란 분석. 유치단쪽에선 “2014년에는 김 위원이 없어도 유치가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윤강로 평창유치위 공동사무총장은 ‘포스트 김운용 시대’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대한체육회 시절부터 쌓은 오랜 국제 업무 경험에 IOC 위원과의 친분도 돈독한 그는 프라하에서 유창한 프랑스어와 영어, 그리고 스페인어로 활발한 유치활동을 벌였다. 그는 한때 김 부위원장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해 실무를 겸비한 외교통으로서 내실을 쌓았다.

동·하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낸 스타플레이어들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 얼굴이 알려져 있어 스포츠 외교를 펼치는 데 유리한 점이 많다. 이번 유치전에도 밴쿠버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살아 있는 전설’ 웨인 그레츠키를, 잘츠부르크는 ‘스키 황제’ 헤르만 마이어를 간판으로 내세웠다.

국내에도 이런 어드밴티지를 갖고 있는 스포츠 스타들이 적지 않다. 우선 동계올림픽 최다관왕인 전이경. 지난해 선수 출신에게 배정되는 IOC 위원 선거에선 낙방했지만 선수분과 위원으로 활약 중인 그는 뛰어난 두뇌 회전이 강점. 마라톤 영웅 황영조도 차세대 스포츠 외교의 주역으로 자격을 갖췄다. 전이경은 연세대에서 석사논문을, 황영조는 고려대에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며 외국 유학도 구상하고 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3000m 금메달리스트 김소희도 뛰어난 미모와 영어실력을 갖춘 재원. 미국 웨스턴일리노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애틀랜타의 스포츠매니지먼트사에 취업할 예정이었던 그는 평창 유치위의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귀국했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스포츠 외교 전문가로 키우는가 하는 점이다.

윤 사무총장은 “IOC 명예위원인 중국의 루셍롱은 처음엔 국제대회의 배드민턴 통역으로 출발했다. 그러다 중국올림픽위원회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배드민턴협회장을 거쳐 IOC 위원까지 됐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출신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 윤 사무총장은 또 준비기간을 가질 수 있도록 스포츠 외교분야에 자질을 보이는 대한올림픽위원회 직원들에게 유학과 연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하계올림픽이나 IOC총회 같은 큰 행사가 열릴 때 많은 직원이 견문을 쌓을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급선무. 대한체육회에 종속돼 있다시피 한 올림픽위원회의 기능 강화도 뒤따라야 한다.

이와 함께 IOC 전문기자도 육성해야 한다. 현재 IOC 출입기자는 25명으로 대부분 백인이지만 일본 교도통신과 중국 신화사통신이 각 1명의 출입기자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IOC 관련 정보 경쟁과 영향력에서 한국을 압도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전문가 기고▼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 책임론으로 김운용씨는 수숫대 끝에 앉아 있는 잠자리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포츠 지도자의 씁쓸한 말로를 보면, 먹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계륵이 떠오른다. 그가 비애국적 행위를 했는지는 김운용씨 본인만이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단지 지난해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 그가 보여준 것처럼 자기변명과 합리화를 되풀이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동안 국제 스포츠계에서 그의 역할과 무게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리 의혹을 국민과 언론은 애써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품성과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은 항상 대안 부재론에 밀렸다.

그러나 김운용씨는 스포츠 외교를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국내의 유능한 인사들이 국제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 왔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다. 냉혹히 말하면 스포츠 외교 시스템 구축을 고의로 방해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지금쯤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 그보다 훨씬 나은 인재들이 활약하고 있을 것이란 가설도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지금까지 김운용씨가 태권도와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충분히 인정돼야 한다. 그러나 수십년간 지속돼 온 그의 독주와 권위주의는 그 종말을 고해야 할 시점이 됐다. 그의 마지막 보루인 태권도계에서도 도덕적 헤게모니를 심각히 훼손당했다. 체육계에서도 그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이제 그만 물러나기를 바라는 공감대가 확산돼 있다.

특히 풀뿌리 체육에 해당하는 학교체육과 생활체육을 도외시한 채 소수정예의 엘리트 선수만 집중 육성하는 과거 동유럽식 모델이 존속하는 것은 김운용 시대가 만들어 낸 유산이라는 주장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체육계의 수장으로 10년을 군림했던 그는 ‘엘리트체육이 발전하면 생활체육이 저절로 발전한다’라는 논리로 체육인과 국민의 인식을 호도했다. 그 결과 체육이 국민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엘리트체육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구조가 확립됐다. 얼마 전 충남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사고 역시 엘리트체육 패러다임이 초래한 것이다.

김운용씨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존경받는 지도자로 역사에 기억되기 위해 아름다운 퇴장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태권도인들의 사퇴 요구에 밀려 물러난 국기원장직에 그가 다시 복귀한 것은 노욕으로 오해될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 많은 태권도인들의 자조 섞인 한숨이 들려온다. 앞으로 국제 스포츠 외교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진심으로 매진해 주기를 바란다. 특정 개인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스포츠 외교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김운용씨가 해야 할 마지막 역할이다.

안민석 중앙대 교수·스포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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