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이것이 협상이다'…협상을 잘하려면 어수룩하게

  • 입력 2003년 7월 11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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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협상이다/허브 코헨 지음 전성철 옮김/430쪽 1만1700원 청년정신

유명한 협상 전문가 허브 코헨의 신작이다. 첫 말은 “협상은 인생의 게임이다”. 맞다. 그러므로 “즐겨라”.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비법은 없을까? 있다. 나는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비법을 배웠다. 그의 전작 ‘협상의 비결’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내 경험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협상하라, 그러나 지나치게 조바심을 갖지는 말라(책에서는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라’로 번역됨),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의사 결정권자는 권위적이기 쉬우므로 직접 협상에 나서지 말라”고 조언한다. 동감한다. 나의 직원 교육 내용: “어느 협상에서건 너희는 언제나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악역은 내게 맡기고 상대방 앞에서 나를 욕해라. 너희는 상대방의 조건을 다 들어주고 싶지만 악질 사장이 결재를 안 해 준다고 말해라. 그래야 협상에 유리하다.”

“어수룩하고 멍청하게 보이는 것이 똑똑하게 보이는 것 보다 낫다”는 내용도 나온다. 실제로 협상꾼으로 알려지면 손해를 보게 된다. 아무리 양보하는 마음으로 임해도 상대방은 내게 어떤 복선이 있을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미지를 줄 것인가는 협상 내용과 상대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어느 협상에서 불량 이미지를 주고자 양팔에 전갈 6마리를 인도 문신 헤나로 징그럽게 그린 적도 있다.

저자는 “협상하기 가장 어려운 상대는 미친 사람과 비이성적인 사람, 자신이 위기에 몰린 경우에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바보”라고 지적하면서 상대가 적대적 혹은 고압적으로 나올 때는 그런 짓을 해야 효과적이라고 충고한다. 이것을 현실에 적용하면 이렇다. “너 나이가 몇 살이냐?” “내가 나이 먹는데 한푼이라도 보태준 거 있수?”

그러나 이 책에서 골수를 뽑아내기는 만만치 않다. 전작에서는 생활에서 응용할 만한 갖가지 사례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으나 신작에서는 그런 예가 별로 없다. 대신 저자가 참여하였던 굵직한 협상이야기들이 나오지만 테러리스트와의 협상 같은 내용에서 협상력을 키우게 될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전작과 중복되는 내용들조차 산만하게 전개되어 지루하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실용서적으로서의 가치가 의심된다.

이론서적으로 보기에도 지나치게 장황한 서술과 체계 없이 혼란스러운 소제목들, 주제에서 벗어난 곁가지들 때문에 격이 낮다. 번역도 좀 껄끄럽다. 저자가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쉬운 말로 겸손하게 최대한 자신을 낮추면서 가식 없이 유머감각을 발휘하면서 인간미가 넘치게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며 협조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감으로서 서로가 이기는 게임을 하라”는 두루뭉술한 교훈을 강조하는 것 역시 전작의 구체성을 기대한 나로서는 못마땅하다. 이론적으로야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싶어서이다. 심지어 전작과 같은 저자인지가 의심이 갈 정도로 아쉬움이 너무 크다. 저자가 20여년 만에 새로 쓴 글이어서 그러려니 할 뿐이다.

협상 서적들을 수 없이 읽었지만 비즈니스 실전에서는 응용이 안 되는 사람을 위한 조언: 사전에 연습 게임을 반드시 하라. 남는 것은 문서뿐이므로 계약 문구를 염두에 두고 협상하라(계약서 작성에 대한 책이 시중에 많다). 유교적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우는 상대에 대한 대응법도 연구하라(불행하게도 이것에 대한 책은 없다).

세이노·동아일보 세이노칼럼 '돈과 인생' 필자sayn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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