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짬뽕과 소주의 힘'…경쾌한 꽁트…4색의 '글맛'

  • 입력 2003년 7월 11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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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과 소주의 힘/김종광 지음/287쪽 9000원 이가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삶의 면면을 진술해 온 젊은 작가 김종광(32)이 원고지 5∼93장 분량의 짧은 소설을 묶은 창작집을 펴냈다. 이번 창작집에서는 이제껏 ‘농촌소설가’로 잘 알려진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다.

1부 ‘힘차고 빠르게 읽기’에는 속도감 넘치는 9편의 콩트가 수록됐다.

은근히 좋아하는 여학생이 냉면을 먹고 싶어 하는데 돈이 없어 컵라면을 먹자고 제안하는 청년(‘냉면’), 2007년 개 뱀 비둘기 닭을 가르치는 학원강사(‘2007년, 학원강사’), 대합실 남자화장실에서 성관계를 시도하는 남녀(‘화장실에서’)를 통해 우리 시대를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3부 ‘보통 빠르게 읽기’에 실린 표제작 ‘짬뽕과 소주의 힘’은 작가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을 담아낸 자전적 소설. 광부이자 농부인 아버지는 공부에 한이 맺혀 있었다. 아들이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배우지 못한 자신의 회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이 야속했다.

아들이 대학교에 합격하자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덥석 잡고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서울살이에 실패한 아들은 고향으로 돌아왔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등단해 ‘소설가 자격증’을 얻고 여러 차례 작품을 발표해도 아버지는 이렇다 말 한마디 없었다.

아버지는 시내에 방을 얻고 소설을 쓰는 풀죽은 아들을 이따금 찾아왔다. 부자는 중국음식점에서 짬뽕과 소주를 시켜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아버지는 물었다. “요샌 무슨 얘기를 쓰고 있는 겨?” 아들은 짬뽕과 소주의 힘을 알게 되었다.

2부 ‘조금 빠르게 읽기’에서는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소설 ‘상도’의 등장인물, 미래의 세계를 지금 이곳으로 불러들이며 4부 ‘깊이 음미할 정도로 느리게 읽기’에는 3편의 단편소설 ‘소설책과 함께’ ‘생존’ ‘철학 한 장의 무게’를 실었다.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씨는 창작집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중편소설 ‘71년생 다인이’ 등을 발표했다. 짙은 충청도 색채로 농촌사회의 해학을 다뤄 ‘제2의 이문구’로 불리기도 한다. 대입시절부터 작가를 봐 온 소설가 전성태는 “이문구 선생이 우리 시대 마지막 유자(儒者)의 풍모로 그곳의 세목들을 살폈다면 김종광은 따라지 출신을 방불케하는 종잡을 수 없는 근본과 날렵함으로 김종광표 보령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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