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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알리, 아메리카를 쏘다'…인종차별에 주먹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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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알리, 아메리카를 쏘다'…인종차별에 주먹날리다

입력 2003-07-11 17:34수정 2009-10-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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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아메리카를 쏘다/마이크 마커시 지음 차익종 옮김/408쪽 1만5000원 당대

1996년 7월 19일 제26회 애틀랜타올림픽 개막식.

성화대 앞에 선 54세의 무하마드 알리는 떨리는 손을 간신히 치켜들고 관중을 향해 흔들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던 그의 현란한 몸놀림은 파킨슨병에 무릎 꿇은 지 오래였다. 힘겨운 모습으로 성화대에 불을 지피는 순간, 저항으로 가득 찬 그의 과거도 불꽃과 함께 타올랐다.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과거의 복싱 영웅이 성화를 점화하는 모습은 젊은 세대에게 휴먼 드라마로 비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종차별을 딛고 세계적 스타가 된 알리에게는 세상과 타협하는 순간이었다. 복싱영웅 알리는 과거 흑인의 영웅이었을 뿐, 예전에는 절대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에서 ‘미국 통합의 상징’으로 나설 수 없었다.

▼무하마드 알리 연표 ▼

1960년 로마올림픽. 열여덟 살의 캐시어스 클레이는 복싱 라이트헤비급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국가대표’로 나가 따낸 금메달은 그의 삶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 백인 식당 출입을 거절당한 그는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리고 프로복싱 선수로 전향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헤비급 프로 복서는 이렇게 탄생했다.

캐시어스 클레이, 훗날의 무하마드 알리가 링 위에서 보여준 삶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1964년 소니 리스턴을 눕히고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클레이는 1967년 전성기에 베트남전쟁 징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링에서 퇴출된다. 1971년,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그는 3년5개월의 공백을 딛고 링에 복귀했으나 조 프레이저에게 판정패한다. 3년 뒤, 32세의 알리는 프레이저로부터 타이틀을 빼앗은 24세의 조지 포먼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40연승을 구가하던 ‘무적’ 포먼의 승리를 점치는 목소리가 압도적이었지만 알리는 예상을 깨고 포먼을 캔버스에 눕혔다.

알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흑인 운동선수는 관중의 대리인, 또는 백인의 여흥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흑인 선수가 자신의 가치관을 대중 앞에 표명하며 ‘독립적 인간’으로 행동하는 것을 주류사회는 용납하지 않았다.

1949년, 프로축구 선수였던 폴 로브슨이 “흑인 형제를 심부름꾼으로 여기는 미국의 체제에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하자 백인 언론을 비롯한 주류사회는 “로브슨이 소련을 찬양했다”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원까지 들썩였고, 흑인 명사들이 줄줄이 동원돼 로브슨에 반대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였던 재키 로빈슨도 출두해 “누구도 1500만명(흑인)을 대표해 말할 수 없다”고 말해야만 했다.

60년대의 알리는 이와 달랐다. 그는 흑인 종교단체인 ‘이슬람네이션’에 가입해 백인 중심 사회에 대항했다.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슬람식 이름도 이슬람네이션의 지도자 엘리야 무하마드가 지어주었다. ‘베트콩과 다툴 마음이 없다’며 베트남전쟁 징병을 거부한 그는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의 압력에 정면으로 맞선, 강렬한 주관과 개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백인 상대를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것은 물론, 여성에게 쓰는 찬사를 동원해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난 권투 선수라 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워.” 잡지 ‘에보니’는 1963년 “캐시어스 클레이는 인종적 자부심으로 이글거리는 용광로”라고 표현했다. 그는 흑인사회의 영웅이었다.

알리의 언행은 60년대 미국이라는 시대배경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소수가 이끌던 흑인운동은 이 시기 당당한 시민운동으로 발전했다. 정부는 모든 물리력을 동원했지만 봇물처럼 터진 저항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더욱이 60년대는 베트남전쟁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제3세계 해방운동이 맞물리는 시기였다. 반전시위와 징집반대운동이 이어졌다. 알리는 이런 흐름의 중심에 서 있었다.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대중은 그를 ‘양심의 대변자’로 평가했고 알리는 자신에게 운명지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알리의 일생을 다룬 이 책이 전기(傳記) 이상의 가치를 갖는 이유는, 그와 관계를 가졌던 인물들 및 시대의 사회 정치적 배경을 적절히, 꼼꼼히 교직했다는 데 있다. 인종차별 반대, 전쟁 반대 등 알리의 행적과 말콤 엑스, 엘리야 무하마드, 돈 킹, 밥 딜런 등 그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었던 인물의 행적을 통해 60년대 전후의 미국 사회 상황과 ‘저항 정신’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결국 이 책에서 알리는 ‘격동의 60년대’를 재조명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적절한 매개자의 역할을 해냈다.

원제 ‘Redemption Song, Muhammad Ali and the Spirit of the Sixties’(1999).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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