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막말…삿대질…'토론없는 TV 토론'

  • 입력 2003년 7월 10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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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BS가 TV 토론 프로그램인 ‘생방송 심야토론’ ‘100인 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의 진행자를 전격 교체하고, 제1라디오를 24시간 토론·시사중심 채널로 특화하는 등 토론 강화에 나섰다. KBS 2TV는 ‘100인 토론’과 유사한 어린이 토론프로그램도 신설했다.

그러나 ‘토론 공화국’을 지향하는 방송사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진행자의 미숙과 패널의 자질 부족, 주제의 부적절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토론 자질 부족 ▼

지난달 28일 방송된 KBS 1TV ‘심야토론’. 김동길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은 상대에게 “당신”이라며 삿대질을 하거나 팔짱을 꼈고(위), 6일 밤 KBS 2TV ‘100인 토론’에서 이상호 국민의 힘 정치개혁위원장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스튜디오를 나가려고 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가운데). 아래는 ‘100인 토론’의 진행자 연세대 김주환 교수. -KBS TV 화면 촬영

6일 밤 방송된 KBS 2TV ‘100인 토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출신이 주축이 된 ‘국민의 힘’이 일부 국회의원에게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질문서를 보낸 ‘국회의원 바로 알기 운동’을 두고 찬반 토론을 벌이던 중 해프닝이 벌어졌다.

“(자리를 뜨며) 제가 일어나서 나가 버립니다.”(패널)

“(급히 제지하며) 아, 나가시면 안 됩니다. 나가시진 않겠죠?”(진행자)

“이러면 방송사곱니다. 그렇죠?”(패널)

패널인 이상호 국민의 힘 정치개혁위원장이 돌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 그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저희들이 (국회의원들에게) 권리를 위임했기 때문에 알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안 하겠다고…. 이 나라에 사고 난 겁니다”며 자기 행위가 일종의 비유였음을 설명했지만, 시청자들은 순간 ‘방송사고’로 알고 가슴을 졸여야 했다.

상대측 패널로 나온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국민의 힘 정책국장) 아이디가 ‘하마’네요. 위원장님은 ‘미키루크’고…. 아이디와 이미지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라며 주제와 상관없는 비난 발언을 했다.

지난달 28일 ‘대북 송금, 정상회담 대가인가 통일비용인가’란 주제로 방송된 KBS 1TV ‘심야토론’에서는 패널끼리 낯 뜨거운 설전이 벌였다.

“아니 여기에서 일방적으로 연설을 하는 자리가 아니니까.”(정균환 민주당 원내총무)

“아니, 당신은….”(김동길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당신 당신 하지 마세요.”(정 총무)

김 이사장은 상대에게 삿대질을 해 가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의 게시판에는 “초등학생 학급회의 같았다” 등의 항의가 빗발쳤다.

▼진행 미숙 ▼

지난달 29일부터 ‘100인 토론’ 사회를 새로 맡은 김주환 교수(연세대 신문방송학과)는 패널들을 효과적으로 컨트롤하지 못했다.

“예, 여기까지 얘기 듣겠습니다.”(진행자)

“10초만.”(패널)

“예. 5초, 5초.”(진행자)

6일 방송에서 자신의 말만 쏟아내는 패널 및 배심원단을 제지하기 위해 김 교수는 “제가 (말을) 자르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프로그램 말미에 실시한 배심원 투표 결과가 초기 투표 결과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도 헷갈렸다. 이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진행자가 연출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듯하다”(홍희경)는 등의 지적이 이어졌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이 많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분위기가 흥분될 수밖에 없다. 프리토킹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말을 끊을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KBS 심야토론에서 진행자 신율 교수(명지대 정치외교학과)도 두 패널의 설전에 당황해 했다. “이사장께서 한 오늘의 역사가 먼 훗날 비쳐질 것입니다”라는 정 총무의 발언에 대해 신 교수는 “자, 우리가 그래서 지금 역사까지 나왔는데요. 잠깐만요. 지금 이제 역사까지 얘기가 나오게 됐는데요”라며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다.

▼주제의 부적절 ▼

KBS가 ‘국내 최초의 어린이 본격 토론프로그램’을 표방하며 지난달 25일부터 신설한 2TV ‘저요! 저요!’는 ‘유승준 입국 문제’ ‘로또 복권 열풍’ 등 초등학생들에게 적절치 않은 주제로 찬반 토론을 유도했다.

첫 회에서 “어른들의 고정 관념을 깨는 어린이들의 독특한 시각과 논리가 보인다”는 진행자의 찬사와 달리 패널로 나선 한 초등학생은 “(유승준) 형의 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국민감정죄’ 정도일 것입니다”라며 기성세대의 생각과 어휘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발언을 했다.

3일 방송된 MBC ‘100분 토론’에 이어 사흘 뒤인 6일 ‘100인 토론’에도 ‘국민의 힘’ 관계자들이 패널로 등장하자 “쟁점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국민의 힘’이 짧은 간격으로 지상파를 통해 홍보 효과를 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KBS는 13일 방송되는 ‘100인 토론’의 주제로 ‘국민의 힘의 국회의원 바로 알기 운동’을 또다시 선정했다고 밝혔다.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토론프로그램들이 최근에는 오히려 갈등을 유발하고 편을 가르거나 국론분열을 조장해 여론 형성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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