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상영/이공계

  • 입력 2003년 7월 10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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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세계에서 이공계 출신을 가장 우대하는 나라이다. 현재 중국을 이끄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이공계 출신이다. 언뜻 떠오르는 사람만 해도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칭화대 수리공정학부, 장쩌민 군사위 주석은 상하이교통대 기계전기학부를 졸업했다. 이 밖에 쩡칭훙 부주석은 베이징공업학원 자동제어과, 원자바오 총리는 베이징지질학원 지질광산학과, 우이 부총리는 베이징석유학원 석유정제과를 나왔다. 주룽지 전 총리, 리펑 전 총리도 이공계 출신이다. 미국과 옛 소련에 뒤진 기술력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위해 1950년대부터 과학기술인 양성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해 온 결과다.

▷반면 한국에서 이공계 인력이 고위직에 오르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가운데 이공계 출신 비율은 24.7%에 불과하다. 더구나 상위직으로 갈수록 이 비율은 급속하게 떨어진다. 3급 24%, 2급 18.2%, 1급 9.7%의 통계에서 보듯 기술직의 고위직 승진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기술직 자리를 행정직이 차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서울시내 25개 구청 가운데 14곳이 기술직인 건설교통국장에 행정직을 앉혀 놓고 있다.

▷속된 말로 출셋길이 막혀 있으니 인생의 승부를 이공계에 걸려는 인재가 적을 수밖에 없다. 이공계를 선택하더라도 대부분 편안한 삶이 보장된 의대를 희망한다. 지방대 의대의 합격선이 서울대 공대보다 높아진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의대가 아닌 이공계에 진학하면 휴학을 하고서 ‘의대 재수’의 길로 들어선다. 올해 서울대 자연대와 공과대에 입학한 신입생 가운데 70여명이 의대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휴학했다. 서울대 대학원 전기 모집에서 자연대와 공대는 각각 정원의 53.7%와 64%밖에 선발하지 못했다. 기초과학의 심장부가 되어야 할 서울대 실험실이 공동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데는 실사구시 원칙에 따라 이론과 실기에 모두 강한 이공계 인재를 선호한 것도 한몫했다. 중국을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이에 자극받아 9일 “이공계 출신을 국가경영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지위에 대거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과학기술자문회의는 10일 2005년부터 행정고시의 절반을 이공계 출신으로 뽑고, 4급 이상 공무원에 대한 기술직 임용할당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에 비해서는 한참 늦었지만 정부 차원의 이공계 육성 방안은 절실하다. 한국의 미래는 결국 이공계 인력의 경쟁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김상영 논설위원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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