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프로젝트]<10>아프간 바미안석불 복원

  • 입력 2003년 7월 10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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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쪽 산의 후미진 곳에 돌로 만들어진 부처님의 입상이 있다. 높이는 140∼150척이며 금색이 찬란하게 빛나고 온갖 보배로 장식되고 눈을 어지럽힌다.”

서기 630년경 서역을 둘러보며 16년간의 구법(求法)여행을 하고 돌아온 중국의 현장(玄‘) 법사는 범연나국(梵衍那國·현재의 아프가니스탄 바미안)에 있는 석불의 아름다움을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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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기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바미안. 이곳은 실크로드를 통해 이어진 동서양의 교차로이기도 했으며 동양에서 온 스님들의 순례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이렇게 암흑 속에 영영 묻힐지도 모르는 바미안 석불이 ‘환생’을 준비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의 연방공과대학(ETH)과 문화재 보호 재단인 세븐 원더스 파운데이션, 그리고 인근 소도시 부벤도프에 위치한 아프간 박물관이 지난해 컨소시엄을 구성해 높이 53m의 거대 석불 복원 작업에 착수한 것.

그 첫 단계로 석불의 평면 사진을 3차원 동영상으로 복구하는 작업은 이미 성공리에 끝났다. 기자는 지난달 24일 이 작업을 총괄한 ETH의 아민 그루엔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바미안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던 사진자료 등을 토대로 복원한 영상사진.-사진제공 ETH

그러나 오늘날 바미안 계곡에서는 과거 화려했던 명성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아있는 것은 흙먼지와 황폐한 계곡뿐. 불상이 들어섰던 동굴 근처에는 2001년 탈레반 전 정권이 파괴한 2개의 거대한 바미안 석불(높이 각각 53m, 38m) 잔해만이 나뒹굴 뿐이다.

컴퓨터의 3차원 영상을 통해 만난 바미안 석불은 보일 듯 말 듯한 입가의 미소며 하늘하늘 섬세하게 주름잡힌 옷자락까지 파괴 전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대로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루엔 교수는 “호주 크레즈기술대학의 T U 코스타 교수가 70년대 아프간 지도를 만들기 위해 현장을 방문해 찍어뒀다 제공해 준 사진 3장이 이번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며 “이들 사진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선명하고 정확한 석불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루엔 교수팀은 컴퓨터 복원작업을 토대로 실제 석불의 약 200분의 1(약 26cm) 크기인 미니 모형을 만들었다. 이들이 준비 중인 다음 작업은 높이 약 5m 정도의 석불 모형을 아프간 박물관 뒤뜰에 세우는 일.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2층 초록 빛 콘크리트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좁은 주차장에 아무런 장식 없는 건물은 얼핏 보기에 간결하다 못해 허름하기까지 하다.

“아프간은 가난과 전쟁의 폐허에서 허덕이는데 외국에 화려한 박물관을 세운다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박하게 지었죠.” 폴 부헤히르 관장의 설명이다.

아프간 박물관은 1999년 스위스 정부와 유럽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아프간 지식인, 왕족들로부터 100만달러의 지원을 받아 세워졌다. 설립 목적은 약탈이나 방화, 분쟁 등으로 파괴돼 가는 아프간 문화재를 보존키 위한 것. 5m 크기의 석불이 들어서기에 이곳만큼 적절한 곳은 없다는 평을 받았다. 올 초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 모하메드 자히르 샤 전 국왕 등이 이곳을 방문해 지지를 표명했다.

부헤히르 관장은 5m 석불을 완성하는 데만 약 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그 후 바미안 현지에 과거 모습 그대로를 재현한 실제 크기의 거대 석불을 세운다는 것이 복원 컨소시엄의 최종 목표다.

이 같은 계획이 알려지면서 협력을 제안해 오는 외국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응용지질 전문회사인 파스코가 현지답사 및 복구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협력 의사를 밝혔고 뉴질랜드의 캐드메도스는 자사의 고성능 밀링머신을 제공하겠다며 바미안 석불 모형 제작 참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난관도 만만찮다.

총 3000만∼5000만달러가 들 것으로 보이는 복구 작업 비용도 아직 턱없이 모자란 데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바미안에 인조 석불을 세워놓으면 디즈니랜드 같은 공원밖에 더 되겠느냐”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부헤히르 관장은 “석불이 복원되면 관광객들이 몰릴 것이고 가난에 찌든 바미안 지역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며 “8월 샤 전 국왕 초청으로 현지 현황 조사를 마친 뒤 적극적인 기부금 유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취리히(스위스)=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아프간 풍요로운 문화에 매료"▼

“유엔의 아프가니스탄 제재 조치가 아프간 국민의 희생만을 불러왔기 때문에 탈레반의 국내 입지가 더욱 굳어질 수 있었습니다.”

스위스 취리히 인근 소도시 부벤도프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 박물관의 폴 부헤히르 관장(60.사진)은 9일 바미안 석불 파괴의 책임은 탈레반 전 정권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부헤히르 관장은 바미안 석불 복원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석불이 파괴되자 유네스코의 허가를 얻어 현장을 방문, 석불터와 주변 언덕 등이 더 이상 손상을 입지 않도록 보호 천막을 치고 온 것도 바로 그다.

원래 아프간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던 건축가 출신의 그가 바미안을 비롯, 아프간 문화재에 이토록 열정적인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아프간은 단 한 번도 유럽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나라였죠. 그 점에 끌려 대학 시절 처음 방문했어요.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데 완전히 매료됐습니다.”

그 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아프간을 수십여 차례 찾았다. 1970년대 모하메드 자히르 샤 당시 국왕의 조카를 우연히 만나 아프간 왕가와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부헤히르 관장이 이끌고 있는 바미안 석불 복원 프로젝트에 대해 샤 전 국왕이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인연에서 시작됐다.

“프랑스나 일본 학자들이 석불 복원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왕의 지지는 절대적입니다. 그는 다양한 종족으로 이뤄진 아프간 국민들을 융합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이기 때문이죠.”

부헤히르 관장은 요즘 5m짜리 바미안 석불 모형을 박물관 뒤뜰에 세우는 일을 준비하는 한편 매주 샤 전 국왕 및 아프간 정부 인사들과 연락을 취하며 진행 상황을 상의하고 있다. 또 8월에는 샤 전 국왕의 초청으로 ETH대학팀 및 석불 복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인 유럽 언론사 관계자들과 함께 바미안을 방문, 현장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부벤도프(스위스)=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바미안계곡 석굴유적 2만여개▼

아프가니스탄 카불 북서쪽 바미안 계곡의 해발 2590m 암벽에 만들어진 동굴사원군(群). 그 수는 크고 작은 것을 합해 무려 2만여개나 된다.

이 유적지는 아프가니스탄의 전 정권인 탈레반에 의해 석불상 2개가 파괴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번 복원 프로젝트의 대상인 53m 높이의 불상은 세계 최대 부처 입석상으로 천연 그대로의 바위를 깎아 만든 뒤 고운 석회로 마무리한 사암 마애석불이다.

이 지역은 8세기 이슬람이 침략하기 전 불교가 융성했던 지역. 바미안 유적지는 기원전후부터 5세기경에 이르기까지 조성된 것이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석굴의 대부분은 계단 또는 회랑으로 연결돼 승방이나 사당으로 사용됐다는 설도 있다.

바미안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불교미술은 그리스 로마의 영향과 인도의 영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이 고대 동서 문화의 교차로였음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이곳처럼 불상을 암벽에 새기거나 동굴을 뚫고 그 안에 조각하는 양식은 훗날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불교미술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슬람의 침략 후 불교가 탄압받기 시작하면서 많은 불상들이 파괴되거나 도굴당하는 등 수난의 역사를 겪어왔다.

유네스코는 최근 이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세계문화유산(WHL)’과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LWHD)’에 동시에 등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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