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청와대, 기업-노사정책 ‘엇박자’

  • 입력 2003년 7월 9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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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정책과 청와대의 노사정책이 불러올 정책효과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각각 강조하는 기업 투명성과 고용 안정이라는 핵심 정책 목표가 모두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주주이익 최우선 vs 노조 권리 확대=공정위가 추진 중인 현 정부의 기업정책은 소유구조의 투명성과 주주이익 보호로 요약된다. 영미(英美)식 기업소유 지배구조를 모델로 삼고 있다.

강철규(姜哲圭) 공정위원장은 지난 달 19일 한 외부강연에서 “영미식과 일독(日獨)식 기업모델 가운데 주주총회와 이사회 등 회사법상 기구가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영미식의 장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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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식 기업 모델의 특징은 △주주 이익 절대 우선 △기업 투명성 확보 △이윤 극대화 △근로자 해고와 고용의 유연성 △활발한 인수합병(M&A) 등이다.

반면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정책실장은 이달 3일 노동조합이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방안을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이 실장은 “(노조에 대한 기업의) 경영정보 제공은 물론 투자전략과 회사합병 등 전략적인 의사결정 과정도 (기업과 노조의) 협의사항”이라고 말했다.

이는 네덜란드의 실제 노사 모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노조가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대신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네덜란드 모델과 가깝다.

▽정책 혼선이 노사관계 악화=문제는 한쪽에서는 주주 권리를 보호하는 쪽으로 기업구조 개혁을 추진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주주의 이익과 어긋날 수 있는 노조권 강화 쪽으로 노사관계를 재정립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당초 의도했던 두 부문의 개혁 목표가 모두 망가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대 김건식(金建植·법학) 교수는 “근로자가 경영에 참여하면 기업은 의도적으로 정보 전달 통로를 차단하게 된다”며 “이는 결국 기업의 투명성을 저해하게 돼 현행 기업정책과 충돌한다”고 말했다.

기업 실적을 평가하는 기준도 모호해진다. 근로자 복지와 권리 증진 때문에 시장 환경에 맞는 기업 활동을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중앙대 정광선(鄭光善·경제학) 교수는 “근로자의 관심은 기업가치 극대화보다는 고용 안정성에 맞춰져 있어 주주의 이해와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기 침체기에는 이러한 노사관계가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실제 네덜란드는 1982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해 외국인 투자도 전년 대비 43%나 급감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 “네덜란드 경제의 급작스러운 하강은 고용 조정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용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도 높다. 고려대 장세진(張世進·경영학) 교수는 “노조의 경영 참여가 활성화되면 고용의 유연성이 떨어진다”며 “근로자 해고가 어려우면 기업은 처음부터 고용을 줄인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당국자는 사견(私見)임을 전제로 “기업구조와 노사관계는 서로 분리될 성질이 아니다”며 “영미식 기업구조에서 유럽식 노사관계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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